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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국제

“탈레반, 강제 결혼시킬 명단 작성중”…여성외출 사라져

입력 2021-08-18 03:00업데이트 2021-08-18 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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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 아프간 점령]
아프간 장악 하루만에 시민들 공포
총 든 탈레반 대원들 검문소 통제
상점-관공서-사무실 대부분 문 닫아
TV선 뉴스 대신 종교 프로그램만
탈레반, 카불 거리 순찰 아프가니스탄 무장반군 탈레반 대원들이 16일(현지 시간) 수도 카불의 하미드카르자이 국제공항 앞을 지키고 있다. 하루 전 이곳에서는 탈레반이 장악한 카불을 빠져나가려는 수천 명의 인파가 한꺼번에 몰리는 바람에 각종 사고가 발생하고 항공기 운항 또한 전면 중단됐지만 이날부터 운영이 재개됐다. 카불=AP 뉴시스
16일(현지 시간)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여성 인권 시계는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지 하루 만에 20년 전 탈레반 집권기(1996∼2001년)의 암흑시대로 되돌아갔다. 이날 카불의 여성들은 탈레반에 구타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 속에 외출을 삼가며 거리에서 거의 사라졌다. 그 대신 집 안에 숨어, 교육을 받고 공직에 나가며 사업을 벌였던 삶의 기록들을 처형의 공포 속에 몰래 불태웠다. 카불의 한 여대생은 “탈레반은 이제 내 삶을 마음대로 할 것”이라며 “노예가 될 것 같다”고 영국 가디언에 토로했다.

아프간 현지 매체 톨로뉴스는 이날 “카불에서 평소 흔하던 여성들의 모임이 사라졌다”며 “공공에서 여성의 존재감이 눈에 띄게 희미해졌다”고 전했다. 신체 일부라도 노출된 여성이 등장한 광고는 철거됐다. 총을 든 탈레반 대원들이 검문소를 통제하며 순찰했고 상점과 관공서, 사무실은 대부분 문을 닫았다. 거리에는 음악이 끊겼고 TV에서는 탤런트 선발 프로그램과 해외 연속극, 뉴스 대신 종교 프로그램만 이어졌다.

카불의 여성 정치인은 가택 연금됐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한 여성 정치인은 16일 탈레반 조직원들이 집에 들이닥쳐 경호원을 무장해제하고 집 밖에 나가지 못하도록 지키기 시작했다고 했다. 또 다른 여성은 남편과 머무는 호텔 방에 들이닥친 탈레반 대원들에게 폭행당했다고 했다. 뉴욕타임스(NYT) 등은 탈레반이 점령지에서 여성들에게 외출 시 몸 전체를 가리는 부르카 착용을 강요하고 있다고 전했다. 부르카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탈레반이 한 점령지에서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대원들과 강제로 결혼시킬 12∼45세 미혼 여성 및 남편을 잃은 여성 명단을 작성하고 있다는 보고가 나왔다고 프랑스24는 전했다.

아프간 여성들은 탈레반 집권기의 억압과 폭력이 돌아올 것이라는 공포에 떨고 있다. 탈레반은 당시 거리에서 여성이 신체 일부를 노출하면 마구 폭행하거나 채찍질을 했다. 여학생은 중학교부터 다니지 못하게 했다. 1999년 아프간에서 중학교를 다니는 여학생은 단 한 명도 없었고 초등학교에도 9000명에 불과했다.

영국 가디언은 15일 아프간 명문 카불대에 재학 중인 한 여대생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이 학생은 이날 탈레반이 카불에 진군하자 고교 졸업증명서를 숨겼다. 그는 “24년간 인생에서 이뤘던 모든 것들을 불태워야 했다”며 “몇 년간 따려고 노력했던 학위도 이제 불가능해졌다”고 했다. 또 다른 20대 여성 공무원은 탈레반 대원들이 아파트 입구에 모인 것을 보고 문을 잠근 뒤 정부에서 일한 것을 드러내는 자료를 전부 불태웠다. BBC에 따르면 탈레반이 장악하기 전 아프간에서는 여학생 350만 명이 학교를 다녔고 대학생 중 3분의 1이 여성이었다. 여성 22%가 직업이 있었고 공직자의 20%가 여성이었다. 그러나 탈레반의 아프간 점령으로 이 모든 숫자가 다시금 ‘0’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 카불의 분위기는 급속히 극도로 보수화되고 있다. 카불의 한 여대생은 “15일 집에 돌아가고 싶었지만 ‘여자를 태웠다’는 이유로 처벌받을 것을 우려한 택시운전사들이 우리를 거부했다”고 했다. 이어 “길거리의 남자들은 우리의 공포를 비웃었다”며 “그들은 우리에게 ‘부르카를 다시 써라’ ‘오늘이 길거리에 나갈 수 있는 마지막 날’이라며 조롱했다”고 전했다. 이 여대생은 “그들이 탈레반의 편에서 힘을 주고 있다”고 덧붙였다.

여성 인권운동을 벌였던 이들은 죽음을 예감한다고 했다. 아프가니스탄 최초의 여성 시장인 자리파 가파리 씨(29)는 “탈레반이 찾아와 나를 죽일 테지만, 어디로 가겠나”라고 했다고 영국 아이뉴스가 15일 전했다. 가파리 씨는 2018년 마이단 와르다크주에서 시장이 됐다. 탈레반은 과거 정치적 영향력이 있는 여성 인사들을 살해하겠다고 되풀이해 밝힌 바 있다.

탈레반 대변인은 15일 “여성도 히잡(스카프의 일종)만 쓴다면 교육과 일자리에 접근할 수 있고, 혼자 집 밖에 나가는 것이 허용된다”고 했다. 탈레반은 또 “모두에게 사면령을 선포했으니 신뢰를 갖고 일상을 시작하라”며 “탈레반은 여성이 희생자가 되길 바라지 않는다. 샤리아법에 따라 그들은 정부 구성에 참여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 같은 약속이 그대로 지켜질 것으로 보는 이들은 많지 않다.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에 따르면 탈레반 통제 지역에서 사춘기가 지난 여학생이 학교에 다니도록 허용하는 사례는 극소수였다. 탈레반이 장악한 농촌지역 두 곳에서만 여학생 6000명이 학교에서 쫓겨났다.

탈출 인파가 몰리면서 아수라장이 됐던 카불 하미드카르자이 국제공항은 16일 오후 11시경 운영을 재개했다고 미군 합동참모본부 관계자는 밝혔다. AFP통신 등에 따르면 이 관계자는 공항 관제 업무를 미국이 맡고 있으며, 공항에 머무는 사람들의 안전이 유지되는 한 되도록 많은 사람을 아프간에서 데리고 나오겠다고 밝혔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
임보미 기자 b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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