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대 쫓기자 “우리집에 들어오세요”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6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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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여명 체포 막은 ‘워싱턴 영웅’… 경찰 진압대 집 포위에도 꿈쩍 안해
“나보다 시위대가 한 일 더 특별”… 시민들 집앞에 꽃 두며 칭송

1일 미국 워싱턴에서 시위에 참여했다가 경찰에 쫓기던 이들이 한 주택에 몸을 숨기고 있다. 집주인 라훌 두베이 씨가 시위대 80여
 명을 자신의 집에 피신시켰다. 이들은 통행금지가 풀린 다음 날 오전 6시에야 집으로 돌아갔다. 아리안 다틸 트위터 캡처
1일 미국 워싱턴에서 시위에 참여했다가 경찰에 쫓기던 이들이 한 주택에 몸을 숨기고 있다. 집주인 라훌 두베이 씨가 시위대 80여 명을 자신의 집에 피신시켰다. 이들은 통행금지가 풀린 다음 날 오전 6시에야 집으로 돌아갔다. 아리안 다틸 트위터 캡처
“이리 들어오세요! 서둘러요!”

1일 오후 8시 30분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약 2km 떨어진 한 주택가. 인도계 남성 라훌 두베이 씨(44·사진)가 문을 활짝 열고 외쳤다. 이에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80여 명의 시위대가 우르르 몰려들었다. 검은 방탄복으로 무장한 경찰 진압대 수십 명이 집을 포위한 채 문을 열라고 했지만 그는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그는 통행금지가 풀린 2일 오전 6시에 집 문을 열고 시위대를 안전하게 돌려보냈다.

CNN 등이 전한 사연은 왜 누리꾼이 두베이 씨를 ‘영웅’으로 칭송하는지 알려준다. 이날 그의 집 인근에서만 194명이 체포됐지만 집에 머문 사람들은 안전했다. 이 집에 숨었던 한 시위 참가자는 “경찰이 여러 방향에서 압박하며 쫓아왔다. 후추스프레이까지 뿌려 눈을 뜰 수 없었고 공포에 빠졌는데 두베이 씨 덕분에 체포를 피했다”고 했다.

두베이 씨는 “사람들이 쓰나미처럼 집 앞으로 밀려왔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누구라도 그렇게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내가 특별히 한 일은 없고 시위대가 한 일이 특별하다”고 강조했다.

그의 부친은 19세 때 단돈 8달러를 들고 미국에 왔다. 그 역시 유색인종과 소수계의 힘든 상황을 잘 알고 있다. 두베이 씨는 에스콰이어지에 “13세 아들이 시위대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면 좋겠다. 그들이 물러서지 말고 평화적으로 시위를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일부 시민은 그의 집 앞에 감사의 의미로 꽃을 놓았고, 다른 이들은 집 앞을 청소했다.

워싱턴 인근 버지니아주는 인종차별의 상징인 ‘로버트 리 장군 동상’을 철거하기로 했다. 19세기 남북전쟁 당시 남부연맹 총사령관을 지낸 로버트 리 장군(1807∼1870)은 노예제를 옹호해 백인 우월주의를 상징하는 인물로 여겨졌다. 이 동상은 1890년 주도(州都) 리치먼드에 세워진 후 줄곧 철거 논란에 시달렸다. 지난달 25일 백인 경관의 강압 행위로 숨진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 씨(46) 사망에 분노한 시위대는 동상에 스프레이를 뿌렸다. 야당 민주당 소속의 흑인 시장 레바 스토니는 “리치먼드는 더 이상 남부연맹의 수도가 아니다. 다양성과 사랑으로 가득하다”고 철거 이유를 밝혔다.

AP통신은 플로이드 씨 사망 직후 이달 4일까지 미 전역에서 1만 명 이상이 체포됐다고 전했다. 로스앤젤레스(2500여 명), 뉴욕(2000여 명), 워싱턴(400명) 등에서 특히 많은 이가 체포됐다고 덧붙였다.

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인종차별 시위대#라훌 두베이 씨#워싱턴 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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