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남아공, 백인 농장주 땅 빼앗고 있다”… 불쑥 트윗에 시끌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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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농장주 살해 조사 요청”
‘고통받는 백인’ 의제 만들어 자극…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지지 유도
남아공 “거짓 정보에서 비롯된 오해”, 美언론 “백인 유권자 마음얻기 전략”

2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에게 남아공의 토지 및 농장 몰수, 대규모 백인 농장주 살해에 
대해 면밀히 알아봐줄 것을 요청했다’는 내용의 글을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올렸다. 이 한마디 때문에 남아공 화폐 가치가 폭락하고,
 남아공 정부는 “거짓 정보에서 비롯된 오해”라며 긴급 진화에 나서야 했다. 도널드 트럼프 트위터 화면 캡처
2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에게 남아공의 토지 및 농장 몰수, 대규모 백인 농장주 살해에 대해 면밀히 알아봐줄 것을 요청했다’는 내용의 글을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올렸다. 이 한마디 때문에 남아공 화폐 가치가 폭락하고, 남아공 정부는 “거짓 정보에서 비롯된 오해”라며 긴급 진화에 나서야 했다. 도널드 트럼프 트위터 화면 캡처
‘폼페이오(미국 국무장관)에게 남아프리카공화국 정부의 백인 토지·농장 몰수, 대규모 백인 농장주 살해(the large scale killing)에 대해 면밀히 조사할 것을 요청했다. 남아공 정부는 백인 농장주들의 땅을 빼앗고 있다.’

2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트위터에 올린 글 때문에 남아공이 발칵 뒤집혔다. 최근 트럼프 행정부의 경제 제재나 관세 공격을 받은 이란, 터키 등의 통화 가치가 급락한 것처럼 남아공 랜드화도 다음 날 장중 한때 1.7% 하락하는 등 출렁였다. 남아공 정부는 “거짓 정보에서 비롯된 오해”라며 적극 해명에 나서고 있다.

로이터 등 외신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은 남아공 토지 문제와 백인 농부의 죽음을 다룬 미국 보수 매체 폭스뉴스 보도에 대한 반응일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폭스뉴스는 22일 “남아공 정부가 백인들의 토지를 보상 없이 재분배하고 있다” “남아공 내에서 백인 농부들이 큰 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등의 내용을 보도했다.

남아공은 전체 인구 5600만 명 중 약 8%에 불과한 백인들이 남아공 전체 경작지 중 72%를 소유하고 있는 등 인종별 경제적 불균형이 심각한 상황이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처럼 ‘최근 남아공에서 백인 농장주를 상대로 한 대량 살해 사건이 일어나고 있다’는 주장은 현실과 다르다는 지적이 적잖다. 남아공 농업 단체 연합회 AgriSA 조사에 따르면 2017∼2018년 사망한 농장주는 총 47명. 2003∼2011년 연평균 약 90명, 2016년 60명이 목숨을 잃은 것과 비교하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올해 초 피터 더튼 호주 내무장관 역시 “폭력으로 인한 공포스러운 환경 때문에 남아공 백인 농장주들이 호주 같은 문명국으로 이주를 원하고 있다”고 발언했다가 근거가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고립된 곳에 사는 농장주가 공격의 대상이 되곤 했을 뿐, ‘백인에 대한 흑인의 집단 공격’으로 단정 짓긴 어렵기 때문이었다. 이번 트럼프 트윗 직후에도 남아공 대통령 대변인실은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정보가 잘못 전달됐다”고 비판했다.

최근 남아공 정부는 과거 식민지 시대의 인종차별정책(아파르트헤이트) 잔재로 남아 있는 ‘인종별 토지 불균형’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시릴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은 이달 초 백인에게 집중된 토지가 흑인에게 재분배될 수 있도록 헌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는데, 그 시기와 방식을 두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토지 개혁 정책을 두고 ‘흑백 갈등’ 조짐이 엿보이는 남아공 사회에 트럼프 대통령이 기름을 부은 격이다. 라마포사 대통령이 소속된 집권당 아프리카민족회의(ANC)에 따르면 아직 몰수된 토지는 없다.

CNN 등 미국의 진보 성향 언론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논쟁적이고 불명확한 사안을 갑자기 언급한 것은 미국 내 백인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기 위한 전략적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해석했다. ‘고통받는 백인’이란 키워드를 정치적으로 악용했다는 설명이다.

미국 최대 유대인단체이자 인권단체인 반명예훼손연맹(Anti-Defamation League)의 마크 핏커비지 선임 연구원은 “백인우월주의자들의 지지를 끌어내려고, ‘백인 농장주 대규모 살인’이라는 근거 없는 주장을 내세워 왜곡된 상상을 심어줬다”고 지적했다. CNN은 “트럼프 대통령은 콩고민주공화국의 전염병 에볼라 재발, 우간다 정부의 야당 지도자 체포, 비무장 시위대를 공격한 짐바브웨 군대 등 아프리카 내의 수많은 이슈는 놔두고, ‘곤경에 빠진 백인 농장주’라는 부정확한 뉴스를 (의제로) 선택했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1월 취임 후 트위터에 아프리카와 관련해 언급한 것은 같은 해 9월 아프리카 지도자들과 오찬을 했을 당시 단 한 번뿐이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카이로=서동일 특파원 dong@donga.com
#트럼프#남아공#백인 농장주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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