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정치위기 몰린 닉슨, 외교-경제고립 마오와 전격 손잡아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4일 03시 00분


北美회담 트럼프와 닮은 듯 다른점

1972년 2월 21일 미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한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마오쩌둥 중국 초대 국가주석과 악수를 하고 있다. 당시 마오쩌둥은 79세, 닉슨은 59세였다. 마오쩌둥은 4년 후 타계했다. 뉴리퍼블릭 웹사이트 캡처
1972년 2월 21일 미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한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마오쩌둥 중국 초대 국가주석과 악수를 하고 있다. 당시 마오쩌둥은 79세, 닉슨은 59세였다. 마오쩌둥은 4년 후 타계했다. 뉴리퍼블릭 웹사이트 캡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45대)은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탄핵 위기에 몰리자 자진 사임한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37대)과 종종 비교돼왔다. 트럼프 대통령의 ‘러시아 스캔들’이 ‘제2의 워터게이트’가 될지 모른다는 불길한 전망 때문이다. 그런 트럼프 대통령이 외교정책에서도 ‘제2의 닉슨’이 될 수 있다는 소리를 듣는다. 사상 최초의 북-미 정상회담을 준비 중인 그가 1972년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 중국을 방문한 닉슨 전 대통령과 비슷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 ‘김정은 만나는 트럼프’와 ‘마오쩌둥 만난 닉슨’


‘Mr. Trump Goes to Korea(트럼프 씨, 한국에 가다).’

요즘 미 언론이 즐겨 쓰는 표현이다. 이는 미 대통령이 역사적 흐름을 바꿀 만한 회담을 하기 위해 외국을 방문할 때 사용되곤 했다. 1972년 닉슨 전 대통령과 중국의 마오쩌둥(毛澤東) 국가주석 간 첫 회담 때도 ‘Mr. Nixon goes to China(닉슨 씨, 중국에 가다)’라는 말이 유행했다.

두 대통령의 상황은 여러모로 닮았다. 국내정치적 위기를 타개하거나 희석시킬 외교적 업적이 필요할 때 역사적 회담에 나선 모양새가 됐다. 또 상대국(닉슨의 중국, 트럼프의 북한)이 경제난과 외교적 고립을 피하고자 먼저 화해의 제스처를 보낸 형국이다. 협상능력이 검증된 외교 충신(忠臣)의 존재와 활약상도 비슷하다. 닉슨 때는 ‘외교의 달인’ 헨리 키신저 당시 국무장관이 사전에 중국을 비밀 방문했고, 북-미 회담의 경우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북한을 극비 방문해 김정은과 먼저 만났다.

닉슨 전 대통령의 중국 방문이 폐쇄적 공산국가를 국제사회의 주요 구성원으로 이끌었던 것처럼 트럼프-김정은 회담에서도 그런 성공을 거둘 수 있을까.

○ 닉슨의 미중은 ‘윈윈’ vs 트럼프의 북-미는 ‘제로섬’?

전문가들은 “1972년 중국을 방문했던 닉슨 전 대통령과 (판문점에서든 평양에서든) 김정은과 만나는 트럼프 대통령을 단순 비교하기 힘들지만 당시 중국과 지금 북한이 처한 국내외 상황은 많이 다르다”고 말한다. 미국 시사잡지 뉴리퍼블릭은 “1970년대 초 국제정세는 닉슨-마오쩌둥 회담이 성공하는 데 유리한 토대를 제공했던 반면, 트럼프-김정은 회담은 성공을 장담하기 힘든 대결 구도로 진행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옛 소련과의 영토분쟁에서 패하고 문화대혁명의 여파로 국내외적 비난을 받던 마오쩌둥은 닉슨과의 회담을 통해 자본주의 수용이라는 역사적인 결정을 내리며 ‘국가 번영의 설계자’ ‘세계적 리더’라는 호평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김정은이 그와 같은 길을 갈 것인지에 대해선 의구심이 적지 않다. 마이클 오스틴 후버연구소 연구원은 “마오쩌둥이 자본주의 수용을 통한 미중관계의 ‘윈윈’을 꾀했다면 김정은은 이번 회담을 ‘제로섬’ 게임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김정은의 경우 ‘정상국가의 리더’로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있긴 하지만, 그것 때문에 완전한 핵 포기라는 최후의 결단을 할 것인지는 여전히 미지수란 설명이다. 반면 핵 포기 없이는 ‘비이성적 독재자’라는 오명을 벗을 수 없기 때문에, 일종의 딜레마에 봉착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정치전문 매체 액시오스는 “김정은은 서구식 협상을 해본 적이 거의 없다. 트럼프 대통령처럼 ‘give-and-take(주고받는)’ 원칙에 충실한 사람은 얻기만 하려는 김정은의 속마음을 꿰뚫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미경 전문기자 mickey@donga.com
#국내 정치위기#닉슨#외교#경제고립#마오#북미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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