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미경의 이런 영어 저런 미국]<15> 미국 미디어 시청기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8일 16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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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levision is a medium of entertainment which permits millions of people to listen to the same joke at the same time, and yet remain lonesome.’ (텔레비전은 수많은 사람들이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농담을 듣지만 외롭도록 하는 오락 매체다)
유명 시인 T.S. 엘리엇이 한 말입니다. 풍요로운 현대사회에서 미디어의 위력은 날로 증가하고 있지만 현대인은 날로 외로워지고 있다는 뜻이죠. 미국은 미디어, 특히 오락 미디어의 천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 산 오락 영화나 드라마가 손을 뻗치지 않는 곳은 지구상에서 없는 듯 합니다.

워싱턴 특파원을 끝내고 돌아오니 미국에서 어떤 드라마를 자주 봤냐고 묻는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웬만한 ‘미드(미국 드라마)’는 우리나라에서도 볼 수 있으니까요.

사실 미국에 살면서 TV 시청 시간은 적었습니다. 제가 TV를 보지 않는다거나 미국 TV가 재미없어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사실은 정반대죠.

한국과의 시간 차 때문에 미국 동부에서 근무하는 특파원은 저녁 시간에 바쁩니다. 자신이 쓸 기사거리를 데스크에서 보내는 발제는 2~3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중요한 업무입니다. 발제를 준비해 회사에 보내는 시간은 미국 TV의 프라임 타임과 겹칩니다. 저녁 7~10시에 해당하는 시간으로 재미있는 프로그램들이 왕창 몰려 있습니다. 이 시간에는 기사를 준비하느라 TV에서 뭐가 방송되는지 잘 모릅니다.

사실 요즘은 기본적인 TV 시청보다 다양한 기술을 활용한 미디어 소비 방식이 각광받고 있는 때죠. 미국에서 저 역시 케이블 채널 HBO를 신청했습니다. 케이블이야 그리 발달한 미디어 기술이라고 할 수도 없지만 어쨌든 기본 TV보다는 다양한 콘텐츠를 볼 수 있죠. HBO는 ‘왕좌의 게임’처럼 약간 자극적이기는 하지만 메시지가 있는 퀄리티 콘텐츠를 자체 제작하는 프리미엄 채널입니다. 극장 영화도 아무거나 가져다 방송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도저히 1,2 시간을 TV 브라운관 앞에 앉아 있을 여유는 없더군요. HBO도 흐지부지 돼버렸죠.

이번에는 넷플릭스에 도전했습니다. TV 앞에 앉아 있을 시간은 없지만 취재 다니면서 자투리 시간에 모바일로 넷플릭스를 볼 수 있으니까요. 당시 넷플릭스는 미국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던 때였습니다. 혁신적 스트리밍 방식이니 뭐니 하면서요. 문제는 넷플릭스의 콘텐츠가 매우 풍부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방대한 콘텐츠 라인업은 별로 시청할 시간 여유가 없는 사람을 선택의 고통에 빠트립니다. 이걸 볼까 저걸 볼까 하다가 아무 것도 못 보는 사태가 자주 발생했습니다.

한국에 돌아와 넷플릭스를 신청했습니다. 미국 생활을 추억하려고요. 그런데 왜 이리 콘텐츠가 매우 부족한지요. 정확히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이용자에게 보여줄 수 있는 콘텐츠를 모아놓은 라이브러리가 미국 넷플릭스가 10개라면 한국은 3,4개 정도입니다. 새로운 콘텐츠가 보강되는 속도도 너무 느리더군요. 그런데도 미국보다 한국 넷플릭스의 월 이용료가 더 비싸니 뭔가 잘못된 듯 합니다. 물론 한국에서 미국보다 부실한 제품과 서비스로 더 비싼 요금을 받는 게 한두 개는 아니지만 말입니다. 역시 외국 소비자는 ‘봉’인가요.

정미경 기자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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