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실업-테러에 지친 佛국민, 舊체제를 청산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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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총선]마크롱 신당 최대 455석 싹쓸이


1804년 당시 35세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은 그 전까지 황제들이 대관식을 치렀던 랭스 대성당 대신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대관식을 치렀다. 부패한 부르봉 왕조와의 결별을 의미하기 위해서였다. 이후 나폴레옹은 프랑스의 산업, 은행, 교육과 법까지 모든 국가 운영 체계를 바꿔놓았다.

나폴레옹 이후 프랑스의 최연소 국가 원수인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40)도 11일 정치 지형을 완전히 바꿔놓는 새로운 선거 혁명의 역사를 썼다.

이번 총선은 역대 총선 중 현역 의원 교체율이 가장 높을 것으로 전망된다.

마크롱 대통령이 이끄는 레퓌블리크 앙마르슈의 돌풍으로 선거에서 승산이 없어진 현역 의원들이 대거 불출마를 선언하며 선거를 포기했다. 그 수가 현역 의원 577명 중 227명(39%)에 이른다. 이들은 마침 법 개정으로 국회의원과 지자체장 겸직을 못하게 되자 의원을 포기했다.

선거에 도전한 현역 의원의 성적표는 더 참담하다. 선거에서 앙마르슈와 맞붙은 현역 의원 326명 중 1차 투표에서 당선되거나 1위로 결선에 오른 이는 58명, 17.8%에 불과했다. 4월 대선후보였던 브누아 아몽을 비롯해 사회당은 현역 의원 출마자 170명 중 100명이 1차 투표에서 탈락했다. 57석에 그쳤던 1993년 총선을 넘어 1969년 창당 이래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든 장크리스토프 캉바델리스 사회당 서기장(대표)은 11일 투표가 끝난 지 20분 만에 기자회견을 열고 “좌파 전체, 특히 사회당의 유례없는 패배”라고 시인했다.

아몽은 12일 트위터에 신에게 버림을 받고 지옥에 떨어져 큰 바위를 계속해서 산 위로 밀어 올리는 벌을 받은 그리스 신화 속 인물 ‘시시포스’의 사진을 올렸다. 그렇게 버림받은 사회당은 국고 보조금이 급감하면서 파리 중부에 있는 당사를 팔고 외곽으로 이사를 가야 할 처지에 놓였다.

이번 총선 결과는 6공화국 이후 정치를 양분해 온 이념 중심의 공화당과 사회당을 향한 염증, 사회당 정부가 만들어 놓은 두 자릿수 실업률에 대한 분노, 잇단 테러에 대한 안보 불안 등이 겹치면서 변화의 열망이 표출됐다는 분석이다.

게다가 취임 한 달 동안 마크롱이 보여준 행보에 대한 높은 기대가 반영됐다. 마크롱은 한 달 동안 정치개혁→노동개혁→사회 연금 개혁의 로드맵을 제시하며 직접 개혁을 진두지휘했다.

우파 공화당의 한 축인 알랭 쥐페 보르도 시장의 측근들을 대거 총리와 장관에 임명한 선거 전략도 탁월했다. 온건파인 쥐페계를 영입하면서 총선 최대 경쟁자인 공화당의 중도 이미지를 희석시키고 강성 우파 이미지를 부각시켰다. 공화당 출신의 에두아르 필리프 총리는 예측조사 직후 “(과거 영광의) 프랑스가 돌아왔다. 대통령의 개혁과 통합에 국민은 지지를 보냈다”고 평가했다. 크리스토프 카스타네르 정부 대변인은 12일 “마크롱 대통령은 선거 결과에 행복했고,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를 넘어 당선이 확정된 후보는 4명뿐이지만 12.5% 이상 득표자들이 겨루는 18일 2차 투표에서는 앙마르슈의 압승이 확정적이다. 여론조사기관 입소스 대표인 브리스 탱튀리에는 “앙마르슈 후보는 거의 모든 선거구에서 2차 결선에 올랐는데, 결선 때는 중도 좌우 표를 다 끌어올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11일 역대 최저 수준인 49%의 1차 투표율은 마크롱 대통령에게 부담이다. 유럽국가 중 투표율이 높기로 소문난 프랑스에서 기권율이 50%를 넘어선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앙마르슈의 압승이 예상되면서 마크롱 대통령에게 반감을 가진 국민이 대거 투표장에 안 나온 것으로 분석된다.

18일 2차 투표에서 마크롱의 일당체제에 대한 견제 심리가 발동할 수도 있다. 캉바델리스 사회당 대표는 “민주적 토론 없는 의회에 공포를 느낀다”고 했다.

대선 때 결선까지 오른 극우 국민전선(FN)은 득표율 13.2%로 3위에 올랐지만 결선투표의 벽이 높아 실제 의석수는 5석 안팎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FN의 유일한 하원의원 출마자인 유명 변호사 질베르 콜라르는 앙마르슈가 공천한 전직 여성 투우사 마리 사라와 32.3%와 32.2%로 거의 동률을 이뤘다. 하지만 FN의 이전 결선 성적을 볼 때 이기는 건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프랑스#총선#마크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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