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레랑스 사라진 佛… 정보기관 “선거뒤 폭동 일어날 수도”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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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대선 1차 투표]
국가비상사태 상황서 첫 대선… 누가 이겨도 불복 투쟁 가능성
후보 4명 막판까지 초접전 양상
트럼프, 르펜 지지 공개 표명… 오바마-메르켈, 마크롱 응원
푸틴은 마크롱에게만 적대감

1848년 나폴레옹 3세 이후 25번째 대통령을 뽑는 프랑스 대선 1차 투표가 23일 전국 6만6546개 투표소에서 일제히 실시됐다. 이날 낮 12시(현재 시간) 현재 유권자 4567만 명 가운데 28.5%가 투표해 예상보다 높은 투표율을 나타냈다. 5년 전 대선 같은 시간(28.3%)보다 조금 높은 수준으로 1981년 이래 2007년 대선(31.2%)을 제외하고는 가장 높다. 투표가 종료되는 오후 8시(한국 시간 24일 오전 3시) 최종 투표율은 2012년 대선 1차 투표 때 투표율 80%에 육박할 것으로 프랑스 언론들은 예측했다. 4명의 후보가 막판까지 초접전 양상으로 흐르자 지지 후보를 찍기 위해 투표장으로 나온 것으로 해석된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업체 비지브레인에 따르면 오후 1시 현재 SNS에 가장 많이 인용된 후보는 극우 성향의 국민전선(FN) 마린 르펜이다. 르펜은 27.2%가 인용되었고 중도 성향의 ‘앙마르슈(전진)’ 에마뉘엘 마크롱 19.9%, 우파 공화당 프랑수아 피용 18.7%, 극좌 연대 장뤼크 멜랑숑(16.9%)이 뒤를 이었다.

이번 선거는 국가비상사태가 선포된 상황에서 치러지는 프랑스의 첫 대통령 선거다. 프랑스 동부의 브장송 지역에서는 투표일 아침 투표소 근처에 주차된 차 안에서 소총이 발견돼 투표소 두 곳이 폐쇄되기도 했다. 테러와는 무관한 것으로 전해졌다. 투표일을 앞두고 연일 테러 시도가 이어지면서 군경 12만여 명이 투표소 주변을 중심으로 삼엄한 경계를 펼쳤다.

경선 과정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했지만 새로운 리더를 맞이하는 희망보다 잿빛 미래가 유권자들을 우울하게 했다. 기성 정당이 몰락한 자리는 극단주의 리더들이 차지했다. 프랑스 정신인 톨레랑스(관용)와 통합 대신 유세장마다 상대 진영에 대한 증오와 폭력이 난무했다. 지지율 20%대의 고만고만한 도토리 키 재기식 후보들 가운데 누가 되건 리더십을 발휘하기 힘든 상황이다.

프랑스 19세기 정치를 전공한 역사학자 장 가리그 파리정치대 교수는 21일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제5공화국 탄생 이래 이런 격변의 시기를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다.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되든 우리는 산산이 부서지고 혼란에 빠진 정치적 풍경을 보게 될 것이다”라며 걱정했다.

22일 프랑스 일간 르파리지앵에 따르면 프랑스 정보기관(DCSP)은 “선거 직후 전국 주요 대도시에서 폭동이 일어날 수 있다”는 비밀문서를 작성했다. 선거 결과를 인정하지 못하는 반대파의 증오가 그만큼 크다는 것이다. 문서에 따르면 “극단주의 후보인 마린 르펜과 장뤼크 멜랑숑 두 후보가 2차 결선에 오를 경우 불복 폭동은 거의 확정적”이다.

이번 프랑스 대선은 전 세계의 관심거리다. 대서양 건너 미국 전현직 대통령들도 이례적으로 특정 후보 지지 성향을 드러내며 선거전에 가담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21일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르펜 지지 의사를 밝혔다. 그는 “르펜이 국경 문제와 현재 프랑스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가장 강경하다. 급진적 이슬람 테러리즘과 국경 문제에 가장 엄격한 사람이 선거에서 잘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날 파리 샹젤리제 거리에서 테러가 터지자 트위터에 “또 테러가 일어났다. 이번 테러는 선거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지지율이 정체 상태인 르펜 지지 분위기를 부추기기도 했다. 반유럽연합(EU), 반난민이 공약인 르펜은 이민자에게 적대적이고 보호무역주의를 강조해 ‘프랑스의 트럼프’로 불려 왔다.

반면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하루 앞선 20일 세계화와 자유무역주의를 지향하는 마크롱과 전화 통화를 하며 “행운을 빈다”고 격려했다. 오바마 측은 “공식 지지 선언을 한 것은 아니다”고 발을 뺐지만 이미 마크롱은 통화 영상을 자신의 트위터에 ‘오바마 고마워요’라는 글을 올려 홍보 효과를 기대했다. 40세의 젊고 역동적인 이미지로 그 역시 ‘프랑스의 오바마’로 불려 왔다.

이번 선거는 6월 영국 총선, 9월 독일 총선 등 남은 선거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전체 유럽인들의 관심이 뜨겁다. 이번 프랑스 대선에도 각종 가짜 뉴스와 사이버 공격으로 개입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특히 그렇다.

푸틴으로서는 ‘빅4’ 네 명의 후보 중 마크롱만 안 되면 된다. 지난달 모스크바에서 “대통령이 되면 바로 대러시아 제재를 해제하겠다”고 말한 르펜, 총리 시절 개인적 친분을 쌓은 우파 공화당 피용, 공산당과 연대를 형성한 극좌 멜랑숑 후보 모두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을 공약으로 들고나왔다. 이 때문에 선거 내내 러시아는 마크롱을 흠집 내는 가짜 뉴스를 퍼뜨렸다.

푸틴과 반대 진영에 서 있는 메르켈 총리의 희망 후보는 당연히 마크롱이다. 마크롱은 올해만 두 번 독일을 방문했는데 메르켈은 총리실에서 그와 면담하는 내내 커튼을 닫지 않고 열어 두었다. 사진기자들이 충분히 두 사람이 만나는 장면을 찍을 수 있도록 시간을 주는 것으로 메르켈이 외국 대선 후보들에게 호의를 보내는 그 나름의 방식이기도 하다.

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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