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민주당 주변을 떠도는 ‘앨 고어의 악몽’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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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대선, 부시에 지지율 우세… 득표 앞섰지만 선거인단서 패배
크루그먼 “불길한 느낌… 재연 우려” 힐러리 의혹 집중보도에 불만 표시

미국 민주당 앨 고어 부통령과 공화당 조지 W 부시 텍사스 주지사가 맞붙었던 2000년 대선은 민주당에는 악몽이었다. 당시 고어는 빌 클린턴 대통령의 높은 지지도 등 유리한 판세였고 총득표수에서도 33만 표 넘게 앞섰지만 주별 승자 독식 방식 때문에 선거인단 득표에선 부시에게 밀려 석패했다.

대표적 진보 논객이자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뉴욕타임스(NYT) 칼럼니스트가 5일자 칼럼 ‘클린턴이 고어처럼 돼 간다’에서 “2000년 대선에서 벌어졌던 일이 이번 대선에서 재연되는 것 같은 불길한 느낌이 든다”고 밝혔다. 민주당 대선 후보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69)이 다 이긴 대선을 놓친 고어의 신세가 될 것 같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얘기다.

가장 큰 이유는 ‘언론 탓’이다. 크루그먼은 “2000년 대선의 경우 모든 면에서 부정직했던 부시는 담대하고 솔직한 사나이로 언론에 묘사된 반면, 부시 공약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지적했던 고어는 교활하고 부정직한 인물로 그려졌다”고 분석했다. 클린턴이 고어처럼 ‘믿을 수 없는 정치인’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도 언론들이 사실 보도보다는 의혹 제기에 혈안이 돼 있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크루그먼은 “AP통신 등이 클린턴재단에 대한 여러 의혹을 제기했지만 한발만 떨어져서 보면 문제 되는 부분이 없다는 걸 알게 된다”며 “언론은 후보가 실제 했던 일과 제시한 공약을 보고 후보의 자질을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클린턴이 고어처럼 불이익을 받는 반면,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70)는 부시처럼 오히려 정직한 인물로 포장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크루그먼은 “트럼프는 준비된 원고를 그대로 읽기만 해도 ‘대통령다워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1100만 불법 이민자를 당장 검거하지는 않겠다’고만 말해도 주류 정치인처럼 인식될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트럼프 캠프와 보수 진영은 “적반하장”이라고 반발했다. 트럼프는 지지자들에게 보낸 e메일에서 “우린 클린턴과 편파 언론, 2개의 적과 싸우고 있다. 일부 언론은 클린턴의 심각한 e메일 스캔들, 클린턴재단 문제 등을 제대로 보도조차 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한편 미국 대선 민심의 변곡점 중 하나인 5일 노동절을 맞아 클린턴과 트럼프는 최대 승부처 중 하나이자 러스트 벨트(rust belt·쇠락한 공업지대)의 핵심인 오하이오 주에서 격돌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역대 대선에선 노동절 민심(여론조사)에서 앞선 후보가 거의 예외 없이 백악관 주인이 됐다. 현재 클린턴이 다소 앞서고 있지만 비호감도가 역대 최고여서 올해도 이 ‘노동절 법칙’이 그대로 적용될지는 미지수”라고 보도했다.

실제로 6일 공개된 CNN/ORC의 다자 대결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트럼프와 클린턴은 사실상 같은 출발선에 서 있는 것으로 보인다. ‘투표가 유력한 유권자’ 사이에선 트럼프가 45% 대 43%로 클린턴을 앞섰지만 ‘등록된 유권자’ 사이에선 클린턴이 트럼프를 44%대 41%로 앞섰다. 둘 다 오차범위 안이다.

클린턴은 이날 유세에 앞서 자신의 새 전용 전세기 힐포스원(힐러리+에어포스원)을 공개하고 처음으로 취재진을 동승시켰다. CNN은 “언론 기피증이 지나치다는 비판을 받아 온 클린턴이 트럼프의 추격세가 거세지면서 달라진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뉴욕=부형권 특파원 bookum90@donga.com / 한기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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