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근본가치 부정”… 번지는 트럼프 회의론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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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차별-여성비하 발언 넘어 참전공로-중산층 삶까지 무시
리더십 의문… 지지층 이탈 조짐
힐러리와 지지율 10%P 벌어져

‘도널드 트럼프가 공화당을 감당할 수 없는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다.’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트럼프(70·사진)의 막말과 기행 퍼레이드가 이어지고 있다. 경선 과정에서도 막말을 일삼았지만 당시엔 열광하는 백인 중하층의 지지가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차원이 다르다. 과연 트럼프가 대통령감이냐는 근본적인 회의가 확산되고 있다.

후보로 공식 지명된 뒤에도 인종 차별과 여성 비하를 담은 ‘막말 폭탄’은 단지 기분을 언짢게 하는 것을 넘어 이런 사람이 미국을 이끌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느냐는 의문을 던지고 있다. 최근 논란이 된 막말들은 미국 사회의 근본 가치에 반(反)하는 것이어서 공화당 지도부의 분노를 촉발했다.

가장 심각한 발언은 군인의 참전 공로를 가볍게 여긴 것을 넘어서 비하하고 조롱까지 한 것이다. 트럼프는 지난달 28일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무슬림 미군 전사자(후마윤 칸)의 아버지가 자신을 비난하자 후마윤의 어머니가 남편 옆에서 침묵한 점을 거론하며 “(무슬림 여성이라) 어쩌면 전당대회에서 말할 수 있는 허락을 못 받았을지도 모른다”고 엉뚱하게 화살을 돌려 사람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2일에는 버지니아 주 애슈번에서 지지자인 참전용사가 전쟁에서 부상당한 군인에게 주는 ‘퍼플 하트’(국가무공훈장)를 선물로 주자 “나는 늘 퍼플 하트를 가지고 싶었다. 이렇게 받는 게 훨씬 쉽다”며 황당한 발언을 했다. 참전 경험이 없는 트럼프가 퍼플 하트를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것을 본 윌리엄 브래턴 뉴욕경찰국장은 “(트럼프의 모습이) 경악스러웠다”고 말했다.

같은 날 유세장에선 한 지지자의 아기가 계속 울자 트럼프는 처음에는 “괜찮다”고 말했다가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아기 엄마 쪽을 바라보며 굳은 표정으로 “아기를 데리고 나가도 된다”며 퇴장을 요구했다. 약자인 아이와 엄마를 배려하는 사회 분위기를 감안하면 트럼프가 아기에게 짜증내는 모습은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부동층 표뿐 아니라 지지층도 등을 돌리게 만들 수 있는 발언이다. 민주당은 “리얼리티TV쇼(어프렌티스·수습생)에서 ‘넌 해고야’를 외치던 사람(트럼프)은 중산층의 삶을 모른다”고 비난했다.

트럼프가 1일 USA투데이 인터뷰에서 “성희롱을 당하면 다른 직업이나 직장을 알아보면 된다”고 말한 것도 논란을 불렀다. 성희롱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트럼프의 모습에 미국민들은 경악했다. 미국에선 직장에서 성희롱을 당하면 강력히 문제 삼고 조사와 처벌을 이끌어내도록 해야 한다고 학교에서 가르친다. 트럼프는 과거 여성들을 성희롱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나중에 문제가 커지자 ‘그냥 빈정댄 것’이라고 어물쩍 둘러댔지만 “러시아가 힐러리 클린턴의 사라진 e메일을 찾아내길 바란다”고 말한 것도 국민 정서와는 크게 동떨어진 것이다. 미국에서 러시아는 냉전 후에도 ‘적국’ 이미지가 강하게 박혀 있는 나라다.

트럼프의 잇따른 막말 파동으로 폭스뉴스가 지난달 31일부터 2일까지 여론조사기관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클린턴 지지율은 49%로 트럼프(39%)보다 10%포인트 앞섰다.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트럼프#회의론#미국#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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