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많은 일자리”… 탈퇴파도 잔류파도 구호는 똑같아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6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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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브렉시트 투표 D-2
탈퇴파 “EU에 매주 5940억원 퍼줘”… 잔류파 “탈퇴땐 재정 50조원 구멍”
서로 “국민을 속이고 있다” 비난

더 많은 일자리, 더 적은 세금, 더 안전한 영국….

23일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국민투표를 앞두고 EU 잔류파와 탈퇴파가 모두 자신들의 홈페이지에서 이처럼 똑같은 슬로건을 내걸었다. 그러면서 서로를 향해 “국민을 속이고 있다”고 삿대질을 한다.

브렉시트가 되면 어떤 상황이 초래될지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영국 기업들은 중대한 결정을 투표 이후로 미루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올해 영국의 인수합병 규모는 576억 달러(약 67조3920억 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0%나 줄었다.

탈퇴 진영은 “영국이 매주 EU에 3억5000만 파운드(약 5940억 원)를 퍼주고 있다”며 브렉시트가 되면 그 돈을 영국 국민을 위해 쓸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 브렉시트 땐 매주 1억 파운드(약 1697억 원)를 영국의 건강보험에 해당하는 국가건강서비스(NHS)에 더 투입해 의료복지를 증진시킬 수 있다고 강조한다.

반면 잔류파는 브렉시트가 되면 글로벌 기업들의 대(對)영국 투자가 줄어들고 수출에도 직격탄을 맞아 세금을 늘리고 복지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조지 오즈번 영국 재무장관은 “영국이 EU를 탈퇴하면 장기적으로 300억 파운드(약 50조9000억 원)의 재정 구멍이 발생할 것”이라며 “상속세율을 40%, 주류세와 연료세도 5% 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브렉시트 때 NHS 예산을 늘릴 수 있다는 탈퇴파의 계산과는 달리 잔류파는 NHS 예산을 연간 25억 파운드(약 4조2347억 원) 삭감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내다봤다.

‘안전’ 문제에서도 상반되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탈퇴파는 지난 10년 동안 EU로부터 이민자 200만 명이 넘어왔고 앞으로 인구 7600만 명의 터키가 EU에 가입하면 영국이 터키 이민자로 뒤덮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브렉시트만이 영국을 난민 범죄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길이라고 외친다. 탈퇴파는 브렉시트 시 유럽 범죄자들을 강제 추방하고 영어를 잘해야만 이민을 받아주도록 이민법을 제한하겠다는 로드맵까지 내놨다

하지만 잔류파는 브렉시트 후 테러 대처에 문제가 생길 것으로 우려한다. 범죄 및 테러와 관련된 정보를 공유하는 유로 폴에서 탈퇴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날 선 상호 비판 속에 탈퇴 진영이 도를 넘은 투표 캠페인으로 역풍을 맞고 있다. 탈퇴파의 한 축인 영국독립당(UKIP)의 캠페인 포스터가 도화선이 됐다. 줄지어 선 난민 수백 명의 사진에 ‘한계점(breaking point)’이라는 문구가 적힌 포스터 앞에 나이절 패라지 당수가 서 있는 모습이 공개되면서 잔류파는 물론이고 탈퇴파 내에서도 난민에 대한 증오와 인종주의를 부추겼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탈퇴 진영에서 활동해 온 무슬림 출신의 사이다 와르시 전 보수당 의장은 “이 포스터는 증오와 제노포비아(외국인 혐오증)를 퍼뜨리는 탈퇴 진영을 더는 지지할 수 없다고 말할 한계점을 넘어섰다”며 ‘잔류’ 진영으로 옮겼다. 함께 탈퇴파를 이끄는 마이클 고브 법무장관 역시 “이 포스터를 봤을 때 몸서리를 쳤다”며 비난했다.

이런 가운데 노벨상 수상 경제학자 10명은 19일 영국 가디언에 서한을 보내 “영국으로서는 EU 잔류가 경제적 관점에서 명백히 유리하다”며 잔류 진영에 힘을 실었다. 이어 “브렉시트 시 파운드화가 급락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브렉시트#브리메인#제노포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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