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규선 칼럼]3·1 vs 3·11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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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인간을 폭압한 3·1운동… 자연이 인간을 겁박한 3·11대지진
상대국만의 불행이 아니라, 서로 돕고 치유할 일로 봐야
12·28 위안부 합의는 불완전… 그러나 보통관계로 가기 위한
피할 수 없었던 결정… 흔들기보다 이행이 중요하다

심규선 대기자
심규선 대기자
지난해 12월 28일, 한일 정부는 극적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매듭짓자고 합의했다. 그리고 맞은 3·1절. 대통령은 축사의 대부분을 북핵 문제에 할애하고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을 절제했다. 정부로서는 힘든 결정이었으며, 위안부 할머니들을 적극 지원하겠고, 일본은 합의를 성실히 이행하라고 했다. 1월 연두 기자회견의 톤을 그대로 답습했다.

대통령보다도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의 발언이 더 관심을 끌었다. 김 대표는 이날 위안부 할머니들과 만나 이렇게 말했다. “국가 간 협상을 했으니, 현재로서는 고칠 수 있는 여건이 안 된다.” 이렇게 하기 어려운 말을, 이렇게 쉽게 한 사람은 김 대표가 처음인 것 같다.

더민주의 태도도 지적해 두고 싶다. 위안부 합의에 대해 더민주는 그동안 강력하게 ‘원천무효’라고 주장해 왔다. 더민주가 다수당인 서울시의회는 합의를 무효화하고 재협상을 촉구하는 결의안까지 채택했다. 그런데도 당론과 배치되는 김 대표의 발언을 누구 하나 문제 삼지 않았다. 위안부 문제를 ‘가슴’으로 다루지 않고, 정치 공세의 호재로만 이용하고 있다는 증좌는 아닌지.

3·1절 열흘 후 일본은 3·11 동일본 대지진 발생 5주년을 맞았다. 사망 1만5894명, 행방불명 2561명, 재난 관련 사망 3407명, 피난 생활 17만 명 이상…. 특집기사들이 넘쳐 난다. 그들이 전하는 숫자에서 전후 최대의 국난이라는 말을 실감한다. 그러나 숫자로는 전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 ‘인간과 그 인간에 얽힌 이야기’다. 거기에 생각이 미치면 3·11은 ‘비극’이다.

아사히신문 11일자 1면 머리기사의 제목은 ‘아직도 먼 일상’이었다. 같은 신문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가장 피해가 심한 후쿠시마(福島) 현 주민의 60% 이상이 ‘복구의 전망이 서 있지 않다’고 답했다.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로 피난 중인 주민의 38%는 예전에 살던 곳으로는 돌아가지 못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3·11은 과거형이 아니라 미래형이라는 게 더 큰 비극이다.

3·1절은 인간, 또는 그 인간이 숭배하는 국가의 폭압 앞에서 다른 인간군이 보여준 저항정신의 숭고함을 기리는 날이다. 3·11은 비록 자연에는 선악이 없다지만 자연이 인간을 겁박하고, 인간은 이에 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날이다. 3·1절은 일본이 가해국이며, 3·11은 바로 옆 나라에서 일어난 불행이다. 그러나 일본은 3·1절의 의미는 망각한 채 대통령이 일본에 대해 어떤 메시지를 내놓을 것인지에만 신경을 쓴다. 한국은 ‘힘내라, 일본’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범국민적 모금운동까지 벌였던 사실을 불과 5년 만에 잊어버렸다.

냉엄한 국제 역학 속에서 두 나라는 어떤 관계를 지향해야 할 것인가. 북한의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는 양국 관계를 급격히 바꾸어 놓았다. 중국에 대한 시각 교정도 있었다. 그나마 위안부 합의를 안 했다면 대통령과 아베 신조 총리는 전화로 북핵 문제를 협의할 수 있었을까.

위안부 합의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사람과 단체가 분명히 존재한다. 합의 이행과 재단 설립 과정에서 분란도 예상된다. 정부는 이들을 끈기 있게 설득해야 한다. 그러나 위안부 합의는 이미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양국 관리들의 심리적 족쇄가 풀리고 있다. 일본인의 한국 방문도 늘어날 조짐이 보인다. 학계는 더 빠르다. 요즘 한일 관련 토론회나 세미나에서는 ‘위안부 합의 이후’라든가 ‘미래 50년’이라는 말이 빠지지 않는다.

한일이 협력을 모색할 분야는 역시 안보 쪽이다. 다만, 역사를 넘어 안보로 달려갈 것인지, 역사와 안보를 동시에 추구할 것인지는 현재로선 판단이 미묘하다. 한일 관계를 양자가 아니라 한미, 한미일, 한중일 등 다자 관계에서 파악하려는 시도도 늘어날 것이다. 바람직하다. 그렇게 된다면 감정의 영향을 덜 받는 이성적 선택지가 넓어질 것이다.

3·1 독립운동과 3·11 동일본 대지진. 결국은 극복하고 치유해야 할 불행이다. 변화의 길목에서 만난 최대의 복병이 위안부 문제였다. 기자도 12·28합의에 일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합의의 본질을 부정할 만큼은 아니라고 보기에 합의를 파기하자는 주장에 대해서는 분명히 반대한다. 지나온 길은 너무 멀고, 되돌아간들 더 나은 소득을 얻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위안부 합의는 종종 상처를 입겠지만 한일이 ‘보통 관계’로 가는 데 꼭 필요한 결단이었다고 나는 믿는다.

심규선대기자 ksshim@donga.com
#3·1운동#3·11대지진#위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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