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슨의 또 다른 거짓말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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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게이트 특종보도 우드워드… 책 ‘대통령의 마지막 측근들’서 폭로
“베트남 공습 효과 없는 것 알면서 방송에선 효과적이라고 왜곡”

“우리는 라오스와 베트남의 하늘을 10년 동안 지배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제로(Zilch)다. 우리 공군 전략에 뭔가 문제가 있다.”

베트남전쟁에서 미국이 치욕적인 패전 상황으로 치닫던 1972년 1월 3일. 리처드 닉슨 당시 미 대통령(사진)은 백악관 안보보좌관이던 헨리 키신저에게 이런 내용의 친필 메모를 썼다. 전황을 담은 비밀문서 위에 가로로 휘갈겨진 이 메모는 “원인을 찾아 2주일 내에 내 책상 위에 올려놓으라”는 신경질적인 지시로 끝이 난다.

그러나 닉슨 대통령은 이 메모를 작성하기 하루 전날 CBS 앵커 댄 래더와 한 시간 동안 인터뷰를 가진 자리에선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한다. 베트남 공습 효과에 대한 질문에 “결과는 매우, 매우 효과적”이라고 정반대로 대답한 것. 그해 11월로 예정된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닉슨이 베트남전 상황을 왜곡해 알림으로써 선거에 활용했던 것이다. 닉슨은 결국 재선에 성공했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1974년 사임하게 된 닉슨의 이 ‘또 다른 거짓말’은 워터게이트 사건의 특종 기자인 워싱턴포스트(WP) 밥 우드워드 전 편집국장의 새 책 ‘대통령의 마지막 측근들(The Last of the President’s Men)’를 통해 공개됐다. 우드워드는 13일 발매되는 새 책에서 “(공습에 관한) 닉슨의 개인적 평가는 정확했으나 재선을 위해 그것을 방어하고 강화했다”고 했다.

우드워드가 이번에 닉슨에 대한 또 다른 폭로를 할 수 있게 도와준 제보자는 닉슨의 부비서실장으로 일했던 알렉산더 버터필드(89). 그는 워터게이트 사건 당시 상원 청문회에 나와 “워터게이트에 대한 연방수사국(FBI) 조사를 방해하라고 중앙정보국(CIA)에 지시하는 닉슨 대통령의 육성이 담긴 녹음테이프가 있다”고 폭로했던 인물이다.

WP가 11일 소개한 우드워드의 새 책은 46시간에 걸친 버터필드와의 인터뷰 및 비밀 자료를 바탕으로 집필됐다. 버터필드는 이 인터뷰에서 “닉슨은 복수심에 불타고 소심하고 부끄러움도 많고 편집증적인 인간이었다”면서 “나의 재임 시절은 그와의 갈등으로 가득 찼다. 모든 것이 시궁창(cesspool)이었다”고 말했다.

버터필드는 백악관 관리들이 그만둘 때 정부 자료를 가지고 나가지 못하게 막는 역할을 맡았지만 정작 자신은 1973년 그만둘 때 자신과 아내의 차에 비밀문서 등을 가득 싣고 나왔다. 이번 책에 소개될 베트남 공습 문서도 그중 한 가지로 지금까지 외부에 공개하지 않은 것이었다.

우드워드는 버터필드의 비밀 파일을 본 뒤 충격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이어 “모든 역사와 마찬가지로 닉슨의 역사도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라고 책에 적었다.


※ 워터게이트

1972년 닉슨재선위원회가 민주당 본부가 있는 워싱턴 시의 워터게이트빌딩에서 도청하려던 사건.

워싱턴=신석호 특파원 kyle@donga.com
#닉슨#거짓말#워터게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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