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제]월세 밀려도… 佛 겨울철엔 “방 빼” 못 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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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입자 보호, 선진국은 어떻게

선진국에서도 주택 월세가 가파르게 치솟고 있다. 하지만 한국처럼 서민층이 무방비로 노출돼 있지는 않다.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선진국은 월세 규제의 그물망을 더 촘촘하게 깔고 있다. 이 국가들이 월세를 규제하는 이유를 짚어 봤다.

세 들긴 어려워도 쫓길 걱정 없는 프랑스

프랑스 파리의 월세는 유럽에서도 매우 비싼 편이다. 파리 시내에서 중산층이 거주하는 지역인 15구, 16구에서는 방 2개와 거실을 갖춘 집은 2000∼2500유로(약 260만∼320만 원), 방이 3개인 경우는 2500∼3000유로(약 320만∼392만 원) 정도다. 유학생들이 주로 사는 ‘스튜디오’라고 불리는 원룸도 시내에서는 800∼1000유로를 줘야 한다. 4∼5년 전만 해도 400∼500유로 수준이었던 것이 크게 올랐다.

박사과정 유학생으로 왔다가 아들과 함께 프랑스에서 7년째 살고 있는 한국인 김모 씨(43·여)는 비싼 집세 때문에 파리를 벗어난 외곽에서 살고 있다. 불로뉴 빌랑쿠르의 도로변 한 아파트의 꼭대기 층에 있는 45m² 원룸인데도 월세는 1100유로(143만 원)다.

그러나 이 집을 얻기까지 수많은 난관에 부닥쳤다. 집주인이 세입자의 수입이 월세의 3∼4배 이상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서류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김 씨는 고정된 월급을 받는 신분이 아니었기 때문에 통장 잔액을 보여줘도 통하지 않았다. 결국 보증인 2명을 세워서 겨우 집을 구했다.

김 씨는 “프랑스에서 집을 구하긴 매우 힘들었는데, 한번 집을 구하면 쫓겨날 걱정 없이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김 씨가 2007년에 월세를 구한 이후로 7년 동안 집세는 84유로밖에 오르지 않았다. 프랑스에서는 매년 한 차례씩 물가인상에 따른 법정 인상분 이상으로 집세를 올릴 수 없다. 그 결과 매년 인상되는 액수가 10∼20유로에 지나지 않는다.

프랑스에서는 계약 갱신 기간에 집주인이 월세를 10% 이상 올리려면 월세가 주변보다 싸다는 정확한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 여기에는 내부 수리비용도 포함된다. 김 씨는 “계약 갱신 기간에도 계속 살고 있는 임차인에게 갑자기 큰돈을 올려 달라고 말할 수 없다”며 “갑작스럽게 돈 때문에 쫓겨날 걱정이 없다”고 말했다.

프랑스 집주인이 월세를 올릴 수 있는 시기는 기존 임차인이 나간 후에 새로운 임차인과 계약을 할 때다. 이 경우 내부 집수리를 해서 단장한 후 집세를 올리는 것이 보통이다. 이 때문에 파리 15구의 경우 예전엔 동양인들을 꺼렸지만 요즘엔 한국인 유학생이나 주재원들을 선호한다. 이들 임차인은 짧게는 2∼3년, 길어야 5년을 머무르다 귀국한다. 그 후 집주인은 집세를 올릴 기회를 엿본다.

저소득층 우선 보호하지만 중산층 부담은 줄지 않은 미국

금융위기가 끝나고 미국 뉴욕 시의 월세 상승세도 가팔라졌다. 맨해튼 남쪽 금융가에서는 방 하나뿐인 아파트가 4000달러(463만 원)를 훌쩍 넘었고 임대료가 비교적 낮았던 브루클린도 3000달러(347만 원)가 넘는 곳이 속출했다. 올 1월 이곳에서 유학 생활을 하던 러시아인 알렉 키리야노프 씨(35)는 맨해튼 남쪽의 원룸에서 살다가 브루클린에서 친구가 빌린 집으로 옮겨갔다. 때만 되면 치솟는 월세를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친구의 원룸에 피난했던 키리야노프 씨는 요즘 ‘임대료 안정화’ 아파트를 구하고 있다. 월세를 함부로 올리지 못하도록 특별법을 적용받는 이런 아파트는 뉴욕 시에만 100만 채이다. 임대료 안정화 제도가 적용되는 경우 연간 최대 임대료 인상률은 3.75%, 2년간 최대 인상률은 7.25%를 넘지 못한다.

이런 아파트의 임대료 인상률은 임대 사업자와 임차인 대표로 이뤄진 ‘임대료가이드라인위원회’에서 매년 결정한다. 위원회는 부동산세, 상하수도 요금, 관리 및 유지 비용과 공실률 등 모든 지표를 반영해 임대료 가이드라인을 정하고 있다. 위원회는 올해 6월 30일 임대 기간이 1년인 아파트 임대료는 동결하고, 2년 임대 아파트는 임대료 상승 폭을 2%로 제한했다. 주택 임대료가 치솟는 상황에서 저소득층의 주거 안정을 위해 사상 처음으로 파격적인 조치를 내놓은 것이다.

뉴욕 시는 1969년부터 임차인 보호를 위해 이 같은 규제를 법률로 못 박아 왔다. 뉴욕 주의 지방정부들은 임대주택 공실률이 5% 미만일 경우 비상 상황을 선포하고 임대료 안정화 제도를 운영할 수 있다.

임차인의 권리는 법원에서도 뒷받침하고 있다. 재계약 과정에서 집주인이 터무니없는 인상을 요구할 경우 법원이 중재에 나선다. 뉴욕 시 카운티에는 주택임대차 법정이 열려 있다. 현지에서 일하는 한 변호사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법원은 통상 임차인을 보호해 주는 편”이라고 귀띔했다.

하지만 이 같은 법도 무차별적으로 적용되지는 않는다. 임대료가 2500달러 이상으로 높거나 임차인의 소득이 지난 2년간 매년 20만 달러 이상 고소득자일 경우에는 안정화 제도를 적용하지 않는다. 고소득자는 비싼 임차료도 감당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임대료 2500달러 이상이 규제의 사각지대로 빠졌다는 게 뉴욕 시가 안고 있는 문제다.

올해 미국 동부 명문대의 경영학과를 졸업한 미국인 C 씨는 초임 연봉 7만5000달러를 받는 뉴욕 월스트리트의 대형 금융기관에 취직하면서 주변 친구들의 부러움을 샀다. 그러나 맨해튼에서 방을 구하면서 심한 좌절감을 느꼈다. 침대와 책상이 1개씩 들어 있고, 샤워 부스가 있는 작은 방(스튜디오) 월세가 보통 2500달러였다. 1년이면 3만 달러로 자신 연봉의 40%인 셈이다. C 씨는 “월세가 가장 싼 맨해튼 할렘 지역에서 다소 큰 방을 구해 동료 2명과 같이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그러지 않으면 집세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뉴욕대의 퍼먼센터 조사에 따르면 뉴욕 시의 300만 가구 중 3분의 2(200만 가구)가 자기 집 없이 월세를 내는 사람들이다. 이들 중 절반인 100만 가구 정도가 가계 소득의 30% 이상을 월세로 지불한다. 뉴욕 시의 월세 평균은 2005년에서 2012년 사이 평균 11% 증가한 반면 가계소득은 2% 증가하는 데 그쳤다.

월세 인상을 세금과 형벌로 다스리는 영국과 독일

주택 임대료에 한해서 세계에서 두 번째라면 서러워할 영국은 과세를 통해 월세 인상을 규제하고 있다. 연간 임대소득이 4250파운드(약 760만 원) 이상이면 주택 한 채 보유자에게도 어김없이 세금 고지서가 날아간다. 1977년 시행된 ‘임대료 법(Rent Act 1977)’에 의한 조치다.

영국 법은 임대료 등록제와 상한제를 명시하고 있다. 임대료 상한제는 공정임대료를 토대로 운영된다. 최대 공정임대료(Maximum Fair Rent)는 임대인이 요구할 수 있는 임대료를 뜻한다.

공정임대료는 감정 평가를 맡고 있는 공무원인 임대료사정관(Rent Officer)이 결정한다. 이 사정관은 임차인이나 임대인으로부터 임대료 산정을 요청받고. 주택의 특성 등을 고려해 공정임대료를 산출한다. 이 과정에는 △임대주택의 건축연도 △주택의 구조적 특징과 유지관리상태 및 입지 △가구 유무와 품질뿐만 아니라 해당 지역과 비슷한 지역의 유사한 주택의 임대료 수준, 수익률, 비용 등이 반영된다. 최대 공정임대료는 기존에 등록된 임대료에다 소비자물가지수 변동률까지 감안해서 결정된다.

이처럼 치밀한 계산에도 불구하고 임차인은 계약일로부터 6개월 이내에 임대료 재평가를 요청할 수 있다.

독일은 월세 인상에 관한 내용을 민법에 반영해 임차인의 주거권을 보장하고 있다. 또 임대인이 임대료 규제 제도를 어길 경우 다소 무거운 형벌이 부과된다.

독일에서 임대료의 계약기간은 원칙적으로 무기한이어서 집주인이 맘대로 쫓아낼 수 없다. 임대 기간의 제한은 집주인의 이사, 철거, 수리 계획이 있는 경우에만 가능하다.

임대료는 물가지수, 비슷한 조건의 주택에 대한 임대료 등을 반영해 결정되는데, 임대인이 일정 기준을 어길 경우 처벌을 받게 된다. 임대인이 임대료를 갑자기 많이 요구하면 형법에 따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벌금형에 처해진다.

임대인에게 불리해도 규제 강도는 더욱 강화

프랑스에서는 주택을 갖고 있는 임대인이 임차인 때문에 곤혹스러워지는 경우가 가끔 발생한다. 한번 계약한 세입자가 월세를 내지 않더라도 강제로 퇴거시킬 수가 없기 때문이다. 겨울철인 11월부터 3월까지는 퇴거 자체가 불법이다. 강제 퇴거를 위한 법적인 절차를 밟아도 최소 2년이 걸린다. 집주인이 월세를 내지 않는 임차인을 찾아가거나, 심지어 열쇠를 바꾸기까지 하지만 이 경우 임차인이 주거침입 혐의로 소송을 걸어 집주인이 봉변을 당하는 경우가 더 많다.

와인유통업을 하고 있는 자크 프레데리크 씨(47)는 수년 전 파리 18구에 있는 주택을 구입하려다가 포기했다. 그는 “사려던 집을 알아보니 임차인이 월세도 내지 않으면서 수년째 나가지 않고 있어 집주인이 매각하려 했던 것”이라며 “결국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한 사람이 이 집을 샀는데 소송을 통해 3년 만에 강제퇴거를 시킬 수 있었다고 한다”고 말했다.

프랑스에서는 집주인이 임차인을 강제로 내보낼 방법이 없기 때문에 임차인에게 더 많은 서류를 요구하거나. 중동이나 아랍계를 차별하는 등 부작용이 일어나고 있다.

그렇지만 유럽 각국은 임대인을 더욱 죄는 법안을 계속 내놓고 있다. 파리 시는 올 8월부터 더욱 강화된 부동산 임대료 인상 제한 조례를 시행하고 있다.

이 조례에 따라 부동산 소유주는 ‘인상 기준 임대료’보다 비싼 월세로 방을 내놓을 수 없게 됐다. ‘인상 기준 임대료’는 같은 지역의 부동산 임대료 중앙값의 120%에 해당하는 돈이다. 또 임차인이 과도한 임대료라고 생각할 경우 이의를 신청할 수 있도록 지역마다 인근 주택 임대료의 상한, 하한, 중간 가격 등의 상세한 정보를 인터넷에 공개한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워싱턴=신석호/뉴욕=부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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