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으면 살던 집 허물어라” 리콴유 미리 지시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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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세 악화되는 ‘싱가포르 국부’… 이웃들 피해 보지않도록 당부
인위적 생명연장 조치도 거부… 병원 앞에 쾌유기원 꽃 가득

싱가포르의 ‘국부’ 리콴유(李光耀·92) 전 총리의 병세가 점점 악화되고 있다고 싱가포르 총리실이 22일 밝혔다.

리 전 총리는 지난달 5일 폐렴이 악화돼 싱가포르종합병원에 입원했고, 2주 전부터 상태가 급격히 악화됐다. 지금은 산소호흡기에 의존해 숨을 쉬고 있는 상황이다. 총리실의 공식 발표에 따르면 ‘매우 심각’(20일), ‘악화됐다’(21일), ‘오늘은 더 쇠약해졌다’(22일) 등으로 리 전 총리의 상태는 계속 나빠지고 있다.

리 전 총리의 상태가 악화되면서 싱가포르에서는 그의 쾌유를 기원하는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시민들이 병원을 찾아와 리 전 총리의 회복을 기원하면서 풍선, 위문 메시지가 담긴 편지, 꽃 등을 두고 가면서 병원 외부 계단을 가득 메웠다. 눈물을 흘리는 시민들도 눈에 띄었다고 현지 언론들이 전했다.

병원을 찾은 시민 브렌다 촤족솬 씨(63)는 “리 전 총리는 혼자서 싱가포르를 작은 국가에서 성공적인 금융 허브로 키워냈다”며 “쾌유를 비는 마음에서 매일 병원에 오고 있다”고 말했다. 헌화하려고 병원을 찾은 한 시민은 “젊었을 때는 정치적 논쟁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나이가 들고 여러 나라를 방문하며 시야를 넓히고 나니 리 전 총리의 원대한 식견을 이해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인터넷 공간에서는 리 전 총리의 이름으로 그려진 초상화가 싱가포르 시민들의 감동을 자아냈다. 옹이텍 씨(20)는 15시간 동안 리 전 총리의 영문 이름인 ‘Lee Kuan Yew’를 A2 용지에 1만8000여 번 쓰는 방법으로 초상화를 만들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렸다. 이 그림은 리 전 총리의 며느리이자 리셴룽(李顯龍) 현 총리의 부인인 호칭(何晶) 여사도 페이스북으로 공유하는 등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리 전 총리의 아들인 리셴룽 총리는 이날 병문안을 하고 난 뒤에도 병원 외부에 마련된 위문 장소에 10분가량 머물며 아버지의 회복을 기원했다.

1923년 싱가포르로 이주한 중국계 사업가 집안에서 태어난 리 전 총리는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고국으로 돌아와 1954년 인민행동당(PAP)을 창당했고, 1959년 PAP가 집권당이 되면서 리 전 총리는 초대 싱가포르 자치정부 총리에 취임했다. 1965년 싱가포르 독립 이후 1990년까지 총리를 맡으면서 싱가포르를 부패 없는 국가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2010년 부인 콰걱추(柯玉芝) 여사 사망 이후 건강이 악화됐고, 최근 2년간은 공개 석상에 거의 등장하지 않았다. 리 전 총리는 ‘만약 내가 일어나지 못하면 생명 연장을 위한 어떤 의료 기기도 사용하지 말라’는 내용의 사전 의료 지침을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자신의 집이 ‘국가 성지’로 지정돼 이웃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사후에는 집을 허물도록 지시하기도 했다.

유덕영 기자 fir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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