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임 교황 프란치스코는 즉위 둘째 날인 15일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에서 이틀째 교회의 신앙심 회복을 역설했다.
앞서 즉위 첫날인 14일 교황은 “신에게 회개하지 않으면 교회는 인심 좋은 비정부기구(NGO)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시스티나 성당에서의 첫 미사 강론에서 교회와 가톨릭 신자가 신앙의 뿌리로 돌아가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십자가 없이 걷고, 십자가 없이 예수의 이름을 부른다면 우리는 예수의 제자가 아닌 세속적인 존재일 뿐”이라며 “이는 어린아이가 쌓은 모래성처럼 모든 것을 무너뜨리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느님에게 기도하지 않는 이는 곧 악마에게 기도하는 것”이라는 프랑스 작가 레옹 블루아(1846∼1917)의 말도 인용했다.
교황 즉위 첫날부터 다양한 파격적 행보가 화제다.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과 달리 라틴어가 아닌 이탈리아어로 설교해 일반 신도와 소통했다. 미사 전 산타마리아 마조레 대성당을 찾을 때는 교황 전용 세단 대신 교황청 경찰 소속 차량을 이용했다. 교황은 콘클라베(추기경단 선거회의) 참가를 위해 2주간 묵었던 호텔 방에서 직접 짐을 꾸려 체크아웃하고 숙박비도 계산했다. 앞서 교황은 13일 선출된 뒤 모든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갈 때 다른 추기경들과 함께 소형 버스에 탑승했다.
뉴욕타임스(NYT)는 14일 콘클라베에 참석한 추기경 등의 말을 인용해 교황 선출 뒷얘기를 소개했다. NYT에 따르면 교황청의 관료조직을 보호하려는 보수파가 선두로 떠오른 개혁파 안젤로 스콜라 밀라노 대교구장의 선출을 막기 위해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 추기경(교황 프란치스코)을 밀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 때부터 바티칸의 2인자로 군림했던 타르치시오 베르토네 교황청 국무원장, 안젤로 소다노 추기경단 단장 등 보수파가 이탈리아 혈통으로 성향도 온건한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을 조직적으로 지지했다는 것이다.
교황의 겸손이 칭송을 받고 있지만 1976년부터 1983년까지 조국 아르헨티나의 군부독재 정권 당시 군부와 민주화 운동 세력 간의 ‘더러운 전쟁(Dirty War)’ 시절 교황의 역할에 대해서는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13일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한 성당 인근 담장에는 “새 교황은 군사정권 시절의 독재자 호르헤 라파일 비델라의 친구”라는 비난 글이 새겨졌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당시 교황이 예수회 신부 2명이 군에 끌려가 가혹한 조사를 받는 것을 방조하는 등 군사정권에 협조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주장에 대해 교황청 대변인은 15일 “반사제 좌익의 교회에 대한 공격”이라고 일축했다.
한편 교황은 12세 때 동갑내기 여자 친구에게 “너와 결혼할 수 없다면 사제가 될 거야”라고 말했다고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가 14일 전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플로레스 지역에 살고 있는 ‘아말리아’로 알려진 옛 여자 친구는 이 같은 일화를 공개했다. 아말리아 씨는 “당시 부모님은 우리가 갈라서도록 모든 일을 다했으며 우리는 그 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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