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무르시 찬반세력 유혈충돌… 6명 사망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2월 7일 03시 00분


코멘트
0

野시위대 해산중 644명 부상… 대통령궁 앞에 탱크 배치
대통령 보좌진 3명 또 사퇴… 부통령 “헌법 초안 수정 가능”

무함마드 무르시 이집트 대통령의 ‘현대판 파라오 헌법’ 추진으로 빚어진 이집트 정정 불안 사태가 정부 지지자들과 야권 시위대 간의 정면 대결로 확산되고 있다. 5일 수도 카이로에서는 양측 간 물리적 충돌로 수백 명의 사상자가 발생해 6월 무르시 대통령 취임 이후 정국은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 카이로 대통령 궁 앞에는 탱크와 장갑차도 배치됐다.

사법부의 다수를 차지하는 호스니 무바라크 전 정권 지지 세력을 와해시키고 대통령의 권력을 대폭 강화하는 동시에 언어, 종교 등 국가적 틀을 이슬람식으로 바꾸려는 집권 세력과 이에 맞서는 시위대가 새 헌법 초안 국민투표(15일)를 앞두고 마지막 대회전에 돌입한 양상이다.

5일 카이로 헬리오폴리스 대통령 궁 주변에서 집권당인 자유정의당 당원 및 지지자 1만 여 명과 전날부터 시위를 벌여온 수천 명의 반정부 세력이 유혈충돌 했다. 친정부 시위대가 궁 주변에서 이틀째 농성을 벌여온 야권 시위대의 텐트를 철거하고 이들을 몰아내려다가 벌어진 일이었다. 화염병과 각목, 투석전이 난무하는 가운데 경찰까지 가세해 6명이 산탄 등에 맞아 사망하고 644명이 부상했다. 사망자 중 기자 한 명이 포함됐다는 보도도 나왔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양측의 대규모 충돌은 일단 끝났고 대통령 지지자 수백 명만 궁 주변에 남았다. 하지만 6일 오전에도 간헐적으로 총 소리가 울리고 전국 곳곳에서 폭력 사태가 이어졌다. 이스마일리야와 수에즈에서는 시위대가 자유정의당 당사에 불을 질렀다. 알렉산드리아에서는 무슬림형제단의 고위 인사이자 헌법 초안 작성에 참여한 제헌의회 의원 소브히 살레흐가 반대파 공격으로 부상당했다.

정부는 채찍과 당근을 병행하는 모습이다. 군은 6일 대통령 궁 정문 앞에 탱크 10대와 장갑차들을 배치했다. 또 시위대에 오후 3시까지 궁 주변을 떠나라고 통첩하는 한편 궁 주변에서의 시위를 금지했다. 그러나 군부는 “시위대에 무력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4일 밤 시위대의 습격을 우려해 궁을 빠져나갔다가 하루 만에 집무실로 복귀했던 무르시 대통령은 이날 TV 연설을 통해 시위대에 진정을 호소하고 야권에 대화를 제의했다. 마흐무드 멕키 부통령은 5일 “국민투표는 예정대로 15일 실시된다”면서도 “초안 일부는 투표 후 바꿀 수 있다. 대화의 문은 열려 있다”고 말했다.

궁 인근에 있던 반정부 시위대는 모두 철수했지만 강경한 태도는 여전하다. 야권의 구심점인 무함마드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과 대선후보였던 암르 무사 전 아랍연맹 사무총장은 기자회견을 열어 “혁명은 자유, 민주주의와 인간의 존엄성을 위해 한 것이지 새 헌법을 위해 한 것이 아니다”라며 “새 헌법 선언을 철회하고 국민투표를 연기한다면 대화하겠다”고 말했다. 5일 무르시 대통령 보좌진 중 3명이 새 헌법에 반대하며 사퇴했다. 새 헌법에 반대해 물러난 보좌진은 6명으로 늘었다.

갈등이 격화되자 이집트 수니파 최고 종교기관인 알아즈하르의 아흐메드 엘타예브 대(大)이맘은 “재앙이 벌어졌다. 이집트를 구하기 위해 양측은 대화를 시작하라”고 촉구했다.

지난달 22일 사법기관의 의회 해산권을 제한하고 대통령의 법령이 최종 효력을 갖는다는 내용 등을 담은 새 헌법 선언문이 발표된 뒤 시작된 ‘파라오 헌법’ 사태의 앞날은 한치 앞을 예측하기 어려운 혼돈으로 이집트를 몰아가고 있다.

미국 등 서구 사회는 새 헌법 선언 추진을 유보해주길 바라고 있다. 그러나 최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교전을 중재하고 협상을 타결시켜 그 위상이 한껏 높아진 무르시 대통령은 물러설 기세가 아니다.

BBC 등 유럽 언론들은 국민투표는 치러질 가능성이 높다며 사태의 향방은 무르시 대통령과 집권 세력이 야권이 수용할 만한 양보안을 내놓을 것인지에 달렸다고 내다봤다. 야권은 벌써부터 부정투표 가능성까지 제기하며 ‘투표는 하나 마나’라는 우려를 하고 있다. 국민투표에서 새 헌법 초안이 통과되면 2월에 총선이 치러진다.

파리=이종훈 특파원 taylor55@donga.com
#무르시#유혈#이집트
  • 좋아요
    1
  • 슬퍼요
    0
  • 화나요
    1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