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에서 발생한 차량 폭탄테러로 정보당국 수장 등 10명이 사망하면서 종파 간 갈등으로 오랜 내전을 치렀던 레바논 정국이 혼란에 빠져들고 있다. 테러 배후로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이 지목된 가운데 이에 항의하는 이슬람 수니파의 대규모 무력시위로 사상자까지 속출하자 내전의 악몽이 되살아나고 있는 것. 시리아 내전의 여파가 터키에 이어 레바논까지 본격 확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CNN방송 등 외신에 따르면 19일 베이루트 동부 중심가인 아슈라피에 지역에서 대형 차량폭탄이 폭발해 레바논 정보부 수장인 위삼 알하산을 비롯해 최소 10명이 숨지고 90여 명이 다쳤다. 수니파 출신의 하산은 2005년 발생한 라피크 하리리 전 레바논 총리의 암살 등 레바논 내 테러사건에 시리아 정권과 레바논 시아파 무장단체 헤즈볼라가 연루됐는지를 조사해 왔다. 지난달엔 아사드 대통령과 가까운 레바논 인사를 체포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이번 테러가 하산을 겨냥한 아사드 정권과 시아파 무장세력의 소행이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헤즈볼라의 지원을 받는 나지브 미카티 레바논 총리마저 20일 기자회견에서 “섣불리 판단하고 싶진 않지만 이번 테러가 하산이 폭로하려던 시리아의 테러 활동 의혹과 무관하지 않다”고 밝혔다.
레바논 정부는 20일을 희생자 추모일로 선포했다. 하지만 수니파가 주축이 된 시위대는 베이루트를 비롯해 남부 시돈, 북부 트리폴리 등 레바논 전역에서 거리를 점령하고 타이어를 불태우며 진압 군인과 무력충돌을 빚었다. 베카 지역에서는 군인들이 시위대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시민 2명이 총탄에 맞아 다쳤으며, 트리폴리에서는 친헤즈볼라 성향의 정당이 시위대의 공격을 받아 당원 1명이 숨졌다.
하산의 장례식이 열린 21일에도 시위는 이어졌다. 레바논 야권은 이날을 ‘분노의 날’로 정하고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최대 야당인 ‘마치14 운동’의 대표 누하드 알마슈누끄는 “이번 테러로 레바논 수니파가 표적이 되고 있다는 게 분명해졌다”며 “시아파인 시리아 정권과 이란 정부를 지지하는 미카티 총리 내각은 즉각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수니파(30%) 시아파(27%) 기독교(39%)의 종교 분포로 이뤄진 레바논에서는 시리아 내전 이후 아사드 정권을 지지하는 시아파와 반군을 지지하는 수니파 간에 총격전과 납치 등 유혈충돌이 잇따르는 상황. 이번 폭탄테러로 양측 갈등이 확산돼 내전이 재발할 수 있다는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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