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수교 20년]권병현 前 주중대사 “中은 이웃국가 더 존중하고 韓은 공동번영 긴 안목 길러야”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8월 20일 03시 00분


권병현 前 주중대사-장팅옌 前 주한대사가 말하는 한-중 오늘과 미래



《 권병현 전 주중 한국대사(74)와 장팅옌(張庭延·76) 전 주한 중국대사는 한중 수교의 상징적 존재다. 모두 1992년 수교 때부터 파트너가 돼 두 사람 사이의 우정도 올해로 20년을 맞았다. 사석에서 호형호제하는 두 전 대사는 한중 간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두 전직 대사에게 한중 관계의 오늘과 미래를 들었다. 》
▼ 권병현 前 주중대사… “양국 松茂栢悅 같은 관계가 가장 바람직” ▼

“긴 역사에서 보면 한중은 끊어졌던 관계를 이제 막 회복한 것이다. 중국은 이웃 국가를 더 존중해야 주변국의 패권주의 우려를 없앨 수 있다. 한국은 한중의 공동번영을 위해 더 긴 문명사적 안목을 가지면 좋겠다.”

20년 전 한중 수교 실무교섭에서 한국 측 대표였던 권병현 전 주중 한국대사는 15일 서울 종로구 무악동 ‘한중문화청소년협회(미래숲)’ 사무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양국 정부에 이렇게 당부했다. 권 전 대사는 2002년부터 비영리 사단법인 미래숲을 창립해 중국의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과 함께 중국의 사막화를 방지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2009년 이후로는 유엔사막화방지협약(UNCCD) 녹색대사직도 맡고 있다.


권 전 대사는 “수교가 맺어지자 양국 국민의 교류는 그 이전 1세기가량 왕래하지 못한 한을 풀기라도 하려는 듯 폭발적으로 증가해 왔다”며 “동북공정이나 마늘 파동과 같은 어두운 일도 있었지만 밝은 면이 훨씬 많았다”고 평가했다. 그가 중국 정부에 이웃 국가를 더 존중할 필요가 있다고 당부한 데는 이웃 국가의 주권은 물론이고 역사까지 존중해 동북공정과 같은 사업을 벌이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한중 수교는 동아시아의 외교 지형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한중 수교의 가장 중요한 의의는 북한과 중국의 혈맹 관계를 깨뜨림으로써 한반도 통일에 한 걸음 더 다가서도록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한중 수교를 결심했던 중국 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은 양국의 수교가 중국과 대만과의 통일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계산을 했다”고 말했다. 또 개혁개방을 성공시켜야 했던 덩은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 이후 외국 자본이 빠져나가자 경제적 측면에서도 한국이 필요했다는 것이 권 전 대사의 분석이다.

그는 “당시 북한 김일성은 한중 수교를 북-미 관계 증진과 함께 진행할 계획으로 중국 측에 한중 수교를 3, 4년 미뤄 줄 것을 요청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며 “한중 수교가 맺어지자 충격을 받은 북한은 이후 약 8년간 중국과 고위층 교류를 거의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중국과 수교하면서 대만과의 단교 문서 초안을 직접 작성한 순간은 “외교관으로서 가장 가슴 아픈 때였다”고 회고했다. 1992년 5월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실무교섭에서는 막후에서 교섭을 주도하던 장팅옌 중국 측 실무교섭단 대표를 회담석상으로 끌어내는 뚝심을 보였다. 그 일을 계기로 그와는 오랜 친구가 됐다.

권 전 대사는 한중 양국의 바람직한 관계를 송무백열(松茂栢悅)에 비유했다. 소나무가 무성한 것을 잣나무가 기뻐한다는 뜻으로 친구의 잘됨을 벗이 좋아한다는 의미다.

권 전 대사는 1965년 외무부(현 외교통상부) 근무를 시작해 동북아2과 과장, 주일 대사관 참사관, 외무부 아주국 국장, 주미얀마 대사, 외무부 외교정책기획실장 등을 거쳐 제4대 주중 대사 등을 지냈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 장팅옌 前 주한대사 “탈북자 문제 상대처지 살펴야 오해 줄어” ▼


“중국을 더 신뢰해 주세요. 중국에 대한 의심을 조금 줄여주세요. 중국과 한국이 추구하는 목표는 같습니다.”

한중 수교 직후 초대 한국대사로 부임해 6년간 근무한 장팅옌 중한우호협회 부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16일 베이징협회 사무실에서 중국의 대표적 지한파이기도 한 장 전 대사를 만났다.

그는 “중한 수교 당시 목표는 이미 초과 달성됐다. 당시 누구도 이렇게 양국 관계가 발전하리라 상상조차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양국 관계가 초고속으로 발전한 이유를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정치적으로는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 경제적으로는 자국의 번영을 위해 양국이 추구했던 방향에 수교가 필요했기 때문이라는 것. 장 전 대사는 “양국이 동일한 목표를 추구하는 한 양국 관계는 앞으로도 더욱 발전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전현직을 떠나 중국 외교관들이 북한에 대해 가급적 언급하지 않는 것과 달리 북한에 대해 묻기도 전에 말을 꺼냈다. 그는 “현재의 중한 관계는 중-북 관계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다”며 “심지어 중한 수교 이전의 중-북 관계보다도 현재의 중한 관계가 더 좋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장 전 대사는 “북한에 대한 중국과 한국의 시각에 서로 다른 점이 있고, 이로 인해 중한 관계에서 탈북자 등 적잖은 문제가 발생한다”며 “서로가 상대방의 처지를 헤아려 냉정하게 접근하면 많은 오해가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장 전 대사는 인터뷰 내내 ‘양국 관계의 큰 틀’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는 “20년 전 양국 수교로 한반도를 둘러싼 냉전 구도는 깨졌다”며 “양국 수교는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막대한 공헌을 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평가했다.

선배 외교관으로서 양국의 후배 외교관들에게 충고도 했다. 그는 “상대방을 사랑하고 상대국에 한평생을 바치는 마음으로 일해야 한다”며 “특히 서로 상대방 언어가 자기 언어처럼 익숙해져야 한다”고 당부했다. 또 양국 언론 보도에 대해서도 “중국어에 ‘차오쭤(炒作·일부러 요란하게 다루다)’라는 말이 있는데 사소한 문제를 ‘차오쭤’해 서로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그는 “중한이 결혼(수교)한 지 20년이 됐다”며 “중년 부부가 되면 여러 문제로 갈등을 겪듯 중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때의 갈등은 신뢰에 기반해 큰 문제로 커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장 전 대사는 “중한 수교의 증인인 것을 평생의 자랑으로 삼고 있다”며 말을 맺었다.

장 전 대사는 베이징대 동어과(東語科·동아시아어과)에 입학해 조선어를 전공한 뒤 1958년 졸업하면서 외교부에 들어갔다. 1998년 퇴임 때까지 40년의 외교관 기간 중 20년을 한반도(북한 14년, 한국 6년)에서 근무하고 나머지 20년도 본부에서 한반도 및 동아시아를 담당했다.

베이징=이헌진 특파원 mungchi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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