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진한 효자 기나긴 간병 앞에선 母살인자로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7월 17일 03시 00분


극진 간병하던 43세 아들 수면부족에 일 저질러 “장수국가는 축복 아닌 비극”

“어젯밤 엄마가 38도 이상 열이 올라 너무 걱정했어. 부지런히 몸을 식혀드렸더니 열이 내려갔어. 안 와도 돼.”

치매를 앓는 어머니(80)를 3년째 간병해온 43세의 아들이 지난달 25일 누나에게 휴대전화로 보낸 문자메시지다.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각별했던 이 아들은 뜻밖에도 닷새 후 어머니에 대한 살인미수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 밤중에 화장실에 가고 싶다며 자신을 깨운 어머니의 목을 졸라 혼수상태에 빠뜨린 것이다. 어머니는 17일이 지난 16일 현재 의식을 되찾지 못한 채 중환자실에 누워 있다. 다행히 숨지지는 않았지만 아들은 경찰에서 “같은 일이 매일 밤 3개월째 이어지면서 수면부족 상태였다. 어머니에게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지었다”면서 울먹였다. 3남 1녀 중 막내인 그는 유일하게 대학원까지 나온 어머니의 자랑이었다. 어머니가 치매 판정을 받았을 때 학원 강사였던 그는 곧바로 직장을 그만두고 간병에 나섰다.

아들의 사연이 언론 보도와 인터넷을 타고 확산되면서 일본 사회 전체가 우울증에 빠졌다. 장수국가, 고령사회가 축복이 아니라 비극임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라는 것. 간병 관련 웹사이트에는 비슷한 처지의 가족들이 “스트레스도 체력도 한계에 달했다. 매일 죽고 싶다는 생각만 하고 있다”고 하소연하는 글이 이어지고 있다.

일본 경찰청에 따르면 ‘간병살인’(간병에 지쳐 살인하는 것) 사건은 2007년 30건에서 2010년 55건으로 해마다 늘었다. 가해자의 70%는 남성이었고 피해자의 70%는 여성이었다. 또 피해자의 30%는 치매였고 자식이 부모를 살해한 사례도 30%에 달했다.

최근에는 ‘노노(老老) 간병’에 따른 비극도 이어지고 있다. 2010년에는 85세의 남편이, 2009년에는 84세의 남편이 치매를 앓던 아내를 살해해 잇따라 법정에 섰다. 이들은 모두 ‘잉꼬 부부’로 소문이 자자했고 남편이 긴 세월 아내를 수발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재판부는 아내와 함께 죽으려고 했던 남편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하면서 “아내를 잊지 말고 오래 살아 달라”고 당부해 열도를 울음바다로 만들기도 했다.

문제는 앞으로다. 저출산으로 간병할 가족은 줄어드는데 수명이 늘어 고령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이 폭발적으로 높아지고 있기 때문. 일본 정부의 ‘고령사회 백서’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율은 지난해 23.3%에서 2025년 30.3%, 2060년 39.9%로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채널A 영상]노인 10명 중 1명 “자살 생각해 봤다”

도쿄=배극인 특파원 bae2150@donga.com
#간병 살인#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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