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복장 고수 무르시 부인, 이집트 ‘영부인 역할론’ 논란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6월 30일 03시 00분


“외국정상 의전 어떡하나”… 국민들은 “소박해서 좋아”

“퍼스트레이디가 아닌 그냥 아흐메드(첫째 아들) 엄마라고 불리는 게 좋아요.”

7월 1일 취임하는 무함마드 무르시 이집트 대통령 당선자의 부인으로 이집트의 첫 이슬람주의자 퍼스트레이디인 나글라 알리 마무드 여사(50·사진)가 주목받고 있다. 최종학력이 고등학교 졸업인 마무드 여사는 무슬림 전통을 따라 결혼 전 성(姓)을 그대로 쓴다.

호스니 무바라크 전임 대통령의 부인 수잔 무바라크 여사와 안와르 사다트 전임 대통령의 부인 지한 사다트 여사 등 이전 퍼스트레이디들은 서구식 전통을 따라 남편의 성을 썼다. 그들은 모두 영국 혼혈인으로 석박사 학위를 갖고 있었고 서구식 패션과 헤어스타일에 충실했다. 뉴욕타임스는 27일 “가장 전형적인 이집트 여성이 대통령궁에 살게 됐다”고 전했다.

색다른 퍼스트레이디의 출현은 이집트 내에 다양한 반응을 불러오고 있다. 이슬람원리주의를 경계하는 친서구적 엘리트층은 심한 반감을 나타냈다. 은행원인 아흐메드 살라흐 씨(29)는 “마무드 여사를 결코 퍼스트레이디라고 부를 수 없다. 이집트의 ‘레이디’상(像)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집트 신문 엘파그르는 칼럼에서 “외국 정상 부부를 만났을 때 마무드 여사가 어떻게 이슬람 전통을 고집할지 궁금하다”며 “이슬람 교리대로면 퍼스트레이디를 쳐다보지 말고 악수도 하지 말아야 하는데 이는 희극”이라고 평했다.

그러나 다수 무슬림 국민들은 마무드 여사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엔지니어 강사인 달리아 사베르 씨(36·여)는 “그는 모든 평범한 어머니의 모습”이라며 “평범한 사람으로서 권좌에 오른 무르시 당선자와 마무드 여사는 아랍의 봄 혁명 정신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말했다. 사치와 전횡이 심했던 전임 퍼스트레이디들에게 국민들이 가진 반감도 마무드 여사에 대한 호감으로 이어지고 있다.

카이로의 가난한 집안에서 자란 마무드 여사는 17세에 친척인 무르시 당선자와 결혼한 뒤 유학 간 남편을 따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생활했다.

1985년 이집트로 돌아온 뒤에는 민주화 투쟁을 하다 투옥된 남편과 자식들의 옥바라지를 했다.

주애진 기자 ja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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