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가는 이집트 군부, 이번엔 대선결과 감추나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6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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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親무바라크’ 포진한 선관위 “부정 의혹… 발표 무기연기”
‘무르시 대통령 인정 못한다’ 軍 최고위 입김 작용한 듯

대대적인 반군부 시위에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 혼수상태설까지 겹쳐 극심한 혼돈상태로 빠져들고 있는 이집트에서 선거당국이 대통령 결선투표 결과 발표를 당초 예정된 날짜인 21일을 넘겨 무기 연기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민주혁명의 성취가 물거품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이집트 국영통신 메나는 20일 “선관위가 선거 부정 의혹 조사를 위해 대통령 결선투표 결과 발표를 무기 연기하기로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선관위는 연기 이유에 대해 “양측이 이번 선거에서 부정이 횡행했다고 주장함에 따라 사실 여부를 조사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타레크 시비 선관위원은 이집트 지방 방송 나일TV와의 인터뷰에서 “선관위는 양측이 제기한 선거 부정 400개의 목록과 증거 확보 작업을 이제 막 완료했다”고 말했다.

17일 대선 결선투표에서 맞붙은 무슬림형제단의 무함마드 무르시 후보와 군부의 지지를 받는 아흐마드 샤피끄 전 총리는 서로 승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샤피끄 후보 측이 “무르시 측이 대규모의 선거 부정을 저질렀다”며 선관위에 고발하자 무르시 후보 측도 샤피끄 후보 측을 같은 내용으로 고발했다. 따라서 이 같은 상황에서는 선관위가 당선자를 발표하더라도 선거 불복 시위가 대규모로 벌어질 가능성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선관위의 결과 발표 연기는 무르시 후보의 당선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군 최고위원회(SCAF)의 입김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선관위를 비롯해 과도정부를 이끄는 군부와 샤피끄 후보가 무바라크 전 대통령 집권 시절 기득권층을 형성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재 과도정권을 이끌고 있는 SCAF에는 무바라크 정권 당시 관료들을 비롯해 형제단이 내세우는 이슬람주의에 반대하는 세속주의자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다. 선관위와 사법부도 형제단에 반대하는 친샤피끄 세력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이집트 군부는 7월 1일로 예정된 민간에 대한 권력 이양을 미루려 한다는 의심을 받아 왔다. 형제단이 만든 자유정의당은 올해 1월 무바라크 축출 이후 처음 치러진 하원선거에서 47%의 의석을 얻어 1당이 됐지만 군부는 이달 14일 하원의원 가운데 3분의 1이 불법적으로 당선됐다며 의회 해산 명령을 내리고 의회를 강제 해산시켰다. SCAF는 또 대선 결선투표가 끝난 직후인 17일 밤 임시헌법을 발표해 입법 및 예산권을 장악했고 새 대통령이 선출되더라도 군 통수권을 행사할 때 SCAF의 허락을 받도록 해 대통령으로부터 내각 구성권을 제외한 모든 권한을 뺏었다.

미국은 이집트 군부에 거듭 경고메시지를 보냈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이날 워싱턴에서 “이집트 군 당국은 선거에서 정당하게 승리한 후보에게 권력을 이양해야 한다. 최근 취하고 있는 행동들은 분명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비난이 일자 하템 베가토 선관위 사무총장은 21일 “이번 주말인 23, 24일 중에 대선 결선투표 결과를 발표할 수도 있다”며 한발 물러섰지만 “양측이 제기한 의혹을 밝히는 것이 급선무”라고 단서를 달았다.

정윤식 기자 jys@donga.com
#이집트#선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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