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질 위기 ‘백년학교’, 효율로 재단해선 안 된다[기고/최용석]

  • 동아일보

최용석 서울 중앙중 교장
최용석 서울 중앙중 교장
서울 도심의 이른바 ‘백년학교’들이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서울 종로의 학교들에서 학생 수 감소를 이유로 교육청 지침에 따른 학급 감축이 잇따르며 교육적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오랜 시간 도심 교육을 떠받쳐 온 종로의 백년학교들이 ‘효율’과 ‘행정 우선주의’라는 기준 앞에서 존폐의 갈림길에 섰다.

서울시교육청 산하 중부교육지원청은 2025년 12월 5일 종로구 소재 초중교에 공문을 보내 2026학년도에 이 지역 6개 학교에서 모두 7개 학급을 감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대상 학교는 대신중, 덕성여중, 배화여중을 비롯해 올해 처음으로 감축이 시작되는 서울사대부설여중과 중앙중, 그리고 재동초다.

종로구에는 초중고교가 모두 36개 있으며, 이 가운데 21개 학교(58%)가 설립 100년이 넘은 ‘백년학교’다. 이번에 학급 감축 대상에 오른 6개 학교 중에서도 4곳이 여기에 해당한다. 감축이 일부 신설·소규모 학교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종로 지역 교육의 중심을 이뤄 온 학교들까지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

중부교육지원청에서 온 공문에 의하면 학급 감축은 학급당 배정 학생 수가 18명 이하일 경우 1학급을 감축한다는 기준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18명 이하라는 자의적 기준도 문제이지만, 이 기준이 지역 특성과 학교 여건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일률적으로 적용되고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문제다. 전국적인 출산율 저하와 도심공동화로 지역의 취학 아동이 급감한 현실과 초중교 학급당 학생 수 상한을 26명까지 늘리려는 효율 중심의 행정이 맞물려 생긴 일이다.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초미니 학교’가 늘어나고 결국 상당수 학교가 폐교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다. 종로의 학교들은 이를 막기 위해 수년 전부터 교육청에 다양한 대안을 제시해 왔다. 인근 지역 학생을 종로 학교에 배정하는 ‘이관배정’이나, 서울 전역에서 학생이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자유학구제’가 대표적이다.

이관배정 제도는 이미 시행 중이지만 적용 범위가 좁고 활용도도 낮아 실효성이 크지 않다는 평가를 받는다. 자유학구제 역시 종로의 일부 초교와 고교에는 유사한 방식이 적용되고 있지만, 중학교에는 아직 도입되지 않았다. 교동초와 재동초는 서울 전역에서 학생이 지원해 배정받고 있고, 도심 고교에는 우선 지원 배정률을 높이는 방식이 운영되고 있다.

학교 관계자들은 이러한 제도가 이미 다른 학교급에서 시행되고 있는 만큼, 행정적 뒷받침만 있다면 중학교에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중학교에 대한 자유학구제 도입 요구는 지금까지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문제는 시간이다. 대응이 늦어질수록 ‘백년학교’는 물론 오랜 시간 쌓아온 도심 교육 기반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오래된 교육 기반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일은 해당 학교만을 위한 일이 아니다. 종로라는 지역의 교육·생활 생태계를 유지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교육 기반이 줄어들거나 사라지면 교육은 물론이고 삶의 생태계도 무너진다. 농어촌에서 폐교가 지역 소멸로 이어진 사례를 우리는 이미 목격한 바 있다. 지금이라도 일률적, 효율 위주의 교육 행정에서 벗어나 백년대계를 고려한 합리적인 결단을 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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