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의문사 인권운동가 시신 전격 화장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6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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톈안먼 21년 옥고 리왕양 씨… ‘유족 몰래 강행’ 의혹 증폭
홍콩서 진상규명 요구 시위… 中서도 3000여명 서명운동

중국에서 1989년 일어난 톈안먼(天安門) 시위와 관련해 약 21년을 옥살이하다 줄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된 인권운동가 리왕양(李旺陽·62·사진) 씨의 시신이 9일 오전 전격 화장됐다. 유족의 동의 없이 당국이 서둘러 화장했다는 의혹이 커지자 반발 기류가 확산되고 있다.

▶본보 8일자 A20면 ‘톈안먼 시위 20년 옥고’ 석방 1년만에…

홍콩에 있는 인권민주운동정보센터(ICHRD)는 리 씨의 시신이 9일 오전 후난(湖南) 성 사오양(邵陽) 시에서 화장됐다고 전했다. 화장에 앞서 유족의 입회 없이 부검한 것으로 전해졌다.

장례식장 직원은 홍콩 언론과의 통화에서 가족의 동의 아래 화장했다고 주장했으나 리 씨의 가족인 여동생과 매부의 행방은 여전히 알려지지 않았다. 이에 앞서 리 씨의 가족과 친지, 중국 인권 운동가들은 △수감생활을 견딘 그가 자살할 이유가 없고 △자살 징후도 보이지 않았으며 △시신 발견 당시 발이 땅에 닿아 있었다면서 타살 가능성을 제기했다.

전 세계 중국인권운동가들은 크게 들썩이고 있다. 홍콩에서는 친중 인사들로 구성된 전국인민대표대회(중국의 국회의원) 홍콩 대표 2명과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위원 3명이 이례적으로 진상 규명을 촉구했다. 7월 1일 임기가 시작되는 홍콩의 새 행정장관 렁춘잉 당선자(58)는 “나도 이 문제에 대해 확실히 생각이 있지만 공개적으로 밝힐 수는 없다”고 말했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전했다.

홍콩 인권운동단체 30곳은 10일 오후 항의집회를 열고 “6월에 서리가 내린다(六月飛霜·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이 있으면 6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며 “리왕양 죽음의 진상을 밝히라”고 주장했다. 이날 집회에 참가한 1000여 명은 홍콩의 중국 정부 연락사무소를 향해 가두행진을 벌였다.

중국에서도 대표적 인권운동가 후자(胡佳)와 반체제 예술가 아이웨이웨이(艾未未) 씨 등 3000여 명이 사인 조사를 요구하는 서명 운동에 합류했다. 하지만 중국 당국은 리 씨의 사인 규명을 요구하는 중국 내 인권인사들이나 리 씨 친구들을 탄압하고 있다. 이 인사들이 가택 연금되거나 연락이 두절되었다고 홍콩 밍(明)보는 전했다. 또 중국 인터넷 당국은 리 씨 관련 소식의 확산을 막고 있다. 중국판 트위터 웨이보(微博)는 리 씨의 이름으로 검색할 수 없다.

리 씨는 1989년 중국 톈안먼 사태 당시 민주화운동을 벌이다 두 차례에 걸쳐 20년을 넘게 복역했다. 그는 감옥에서 풀려난 지 1년여 만에 사오양 시의 한 병원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베이징=이헌진 특파원 mungchii@donga.com
#톈안먼#리왕양#중국 인권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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