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혈사태 23주년… 광장 가보니
외국인 가방까지 일일이 열어봐
유족 집중 단속… 일부 소식 끊겨
“가방 좀 열어봅시다.”
중국 톈안먼(天安門) 사태 23주년인 4일, 베이징(北京) 중심부의 톈안먼 광장에 들어선 기자가 처음 맞닥뜨린 건 공안의 검문이었다. 평소에도 광장 입구에서는 검문이 있었다. 하지만 형식에 그쳤다. 워낙 관광객이 많아서다. 하지만 이날은 X선 투시기를 거친 배낭을 공안들이 직접 열어보고 서류와 책 등을 꼼꼼히 살펴봤다. 이들은 “당신 외국인이냐?”며 직업이 뭔지 등을 묻고 입장을 허락했다.
검문이 강화됐지만 이날 톈안먼 일대는 시골에서 올라온 단체관광객이 깃발을 든 가이드의 뒤를 따라다니며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었다. 경비 병력이 증강된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정오가 되자 업무교대를 위해 줄을 선 경찰 뒤로 평상복을 입은 젊은이 수십 명이 행진하는 모습이 보였다. 관광객 사이에 끼어 있던 사복 경찰들이다. 한 노점상은 “6·4(중국에서 톈안먼 사태를 부르는 말) 때문에 경찰이 평소보다 늘었다”고 전했다.
올해는 특히 가을에 10년 만의 권력교체가 예정돼 있는 데다 보시라이(薄熙來) 사태와 천광청(陳光誠) 씨 사태 등이 연달아 터진 탓에 공안 당국이 바짝 긴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각급 정부는 이번 23주년을 즈음해 ‘전시업무체제’에 돌입했다. 베이징 퉁저우(通州) 구는 홈페이지에 올린 통지문에서 “5월 31일부터 6월 4일까지 전시업무체제를 가동한다”며 “보안 자원봉사자는 붉은 완장을 차고 순찰 활동을 하라”고 독려했다. 또 각 지역의 공무원들에게 톈안먼 시위 관련 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분석할 것을 지시했다.
앞서 2일 베이징 남역에서는 각 지방에서 올라온 600∼1000명의 시위대가 경찰에 체포된 뒤 버스에 태워져 원래 있던 곳으로 돌려보내졌다. 푸젠(福建) 성 푸저우(福州)에서는 경찰이 20여 명의 시위대를 폭행해 해산시켰고 그중 8명은 구금했다. 남편이 잡혀 있다는 스리핑 씨는 AFP통신에 “구금된 사람들이 죽도록 얻어맞을 것이라는 말을 공안으로부터 들었다”고 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당국이 톈안먼 사태 유가족들에 대한 단속에 나섰다고 전했다. 유가족 모임인 ‘톈안먼 어머니회’를 창설한 딩쯔린(丁子霖) 씨는 최근 모습을 감춘 것으로 알려졌다. 한 지인은 “딩 씨가 당국으로부터 3일과 4일 감호처분을 받을 것이라는 통보를 받았다고 전했다”며 “그가 가택연금 상태이거나 다른 곳으로 끌려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톈안먼 어머니회는 지난주 정부에 보낸 서한에서 “살아 있는 한 정의를 위한 투쟁은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홍콩에서는 이날도 과거처럼 톈안먼 희생자를 애도하는 촛불집회를 열었다. 하지만 본토에서는 포털사이트에서 ‘촛불’이라는 단어조차 검색이 차단됐다.
기자는 톈안먼 주변을 돌아보고 다시 광장으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심해지는 검문 때문에 포기했다. 광장은 열린 공간이기 때문에 광장으로 불린다. 하지만 이날 톈안먼 광장은 23년 전처럼 닫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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