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지구촌 새권력/러시아]푸틴 3期… “변하지 않으면 버티기 힘들것”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3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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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강한 러시아를 원한다. 푸틴은 우리의 염원을 담아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다.”(비탈리 세플랴예프·52·국영기업 직원)

“푸틴의 국정 장악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력했지만, 뭔가 변하지 않으면 오래 버티기 힘들 것이다.”(안드레야 도로페예바·35·여·상점 종업원)

4일 모스크바 남쪽 우달초바 거리의 투표소에서 만난 두 사람은 이날 치러진 대통령선거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가 임기 6년의 대통령에 당선될 것이라는 점에는 의견을 같이했다. 하지만 푸틴 체제의 전망에 대해서는 이처럼 큰 차이를 나타냈다.

푸틴을 지지한 시민들은 소련 붕괴 직후 러시아를 덮친 대혼란이 되풀이될 것을 우려해 정치적 안정과 사회질서를 바라고 한 표를 던졌다고 말했다. 반면 5일 모스크바 시내에서 열리는 야권의 반(反)푸틴 집회에 참여하겠다는 시민들은 “푸틴 체제가 바뀌지 않으면 강력한 반대에 부닥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처럼 엇갈린 전망은 푸틴 3기가 ‘푸틴식 차르 체제’를 구가하던 때와는 다른 시대가 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 ‘중산층, 장기 통치에 염증 느낀다’

초강력 대통령 중심제 국가인 러시아에서 세 번째로 대통령에 오를 푸틴은 견제 세력이 거의 없는 권위주의 체제를 유지해왔다. 투표소에서 감지되는 푸틴에 대한 높은 지지율을 감안하면 푸틴이 임기 6년의 3선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종전의 통치 스타일을 그대로 유지할 가능성이 있다.

신문기자 출신 정치평론가 블라디미르 샤포발로프 씨(52)는 “푸틴은 그의 상트페테르부르크 사단에 둘러싸여 있어 국가안보와 사회 질서 유지에 우선순위를 두는 권력의 틀을 바꿀 이유가 없다”고 내다봤다. 대외적으로는 ‘강력한 러시아’ 노선을 바탕으로 서방과 대립각을 세우며 국내 지지율을 끌어올린다는 전략에 매달릴 가능성이 많다.

푸틴은 2007년 2월 독일 뮌헨에서 열린 국제안보회의에서 “미국이 지배하는 단극 체제는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있다”며 미국을 비난했다. 이 기조는 2008년 5월 대통령 자리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현 러시아 대통령에게 물려줄 당시까지 유지됐다. 이로 인해 러시아는 이란 핵, 동유럽 미사일방어체제(MD), 유럽 재래식무기감축협정(CFE) 이행 중단 등의 국제 문제에서 미국과 사사건건 대립하면서 독자적인 목소리를 냈다. 이런 강경노선 덕분에 푸틴의 지지율은 한때 80% 이상으로 올라가기도 했다.

하지만 러시아 전문가들은 “푸틴이 대내외적으로 더는 강경 노선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관측에 더 힘을 싣고 있다. 지난해 12월 총선에서 선거부정 의혹이 제기된 이후 70%대의 푸틴 지지율이 40% 아래로 곤두박질치면서 그의 정치 역정에도 적지 않은 상처가 났다.

알렉산드르 콜레스니첸코 모스크바전략문제연구소 연구원은 “종전의 강경 노선을 계속 고집할 경우 야권 반대에 부닥쳐 정치적 불확실성과 긴장이 고조될 것이 뻔한데, 푸틴이 그런 상황을 원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푸틴의 장기 통치에 염증을 느껴 등을 돌린 도시 중산층의 대응, 외국 자본 이탈과 러시아의 경제 개혁도 푸틴의 발목을 잡을 요인으로 꼽힌다.

모스크바에서 6년간 체류한 유럽 국가 출신의 한 외교관은 “중산층의 속마음은 부글부글 끓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푸틴도 이런 분위기를 읽은 듯 최근 “러시아는 혁명을 원하지 않는다. 길거리의 시위대를 진압하지 않겠다. 정치 자유화 개혁을 계속하겠다”고 여러 차례 다짐했다.

○ 한반도 정책, 현재와 큰 변화 없을 듯


푸틴 총리는 지난달 27일 일간 ‘모스콥스키예 노보스티’에 실린 ‘러시아와 변화하는 세계’라는 제목의 기고문에서 자신의 한반도 정책 방향을 예고했다. 그는 “우리(러시아)는 6자회담 조기 재개라는 정치적 외교적 수단을 통한 한반도 비핵화를 강조하지만 모든 파트너가 이런 접근법을 공유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북한 새 지도자(김정은)의 능력을 시험하다가는 (그의) 무분별한 대응을 유발할 수 있다”고 밝혔다.

다만 북한의 핵개발을 옹호하거나 용납하지 않겠다는 태도도 분명하게 드러냈다. 그는 “(우리는)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북한 지도자들과 실질적인 대화를 지속하고 선린(善隣) 관계를 발전시킴으로써 평양이 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뒷받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푸틴 시대에 본격화될 한국과의 협력사업 분야는 가스관 건설 프로젝트를 꼽을 수 있다. 러시아 측은 북한을 통과해 한국으로 연결되는 가스관에 대한 안전 보장 문제를 북측과 심도 있게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모스크바=정위용 기자 viyonz@donga.com  

▼ 번갈아 가며 대머리 지도자 또 맞았네 ▼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가 다시 대통령직에 오르게 됨에 따라 러시아 지도자들이 한 대를 건너 대머리가 집권하는 ‘대머리 격세유전’의 전통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블라디미르 레닌이 1917년 볼셰비키 혁명으로 러시아의 니콜라이 2세 황제를 몰아낸 이래 구소련을 포함해 러시아는 머리숱이 많은 지도자와 대머리 지도자가 번갈아 가며 권력을 차지했다. 레닌에 이어 이오시프 스탈린→니키타 흐루쇼프→레오니트 브레즈네프→유리 안드로포프→콘스탄틴 체르넨코→미하일 고르바초프에 이르는 공산당 서기장들은 예외 없이 격세유전을 되풀이했다. 1991년 독립국가연합(CIS)을 만들어 러시아를 이끈 머리숱 많은 보리스 옐친 대통령 이후에도 대머리인 푸틴 대통령이 집권했고, 머리숱이 많은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뒤를 이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지난해 9월 푸틴 총리의 대선 참여 발표 직후 “크렘리놀로지(러시아연구)는 한 번도 과학적이었던 시기가 없다. 그러나 ‘대머리-숱 많은 머리 지도자’ 이분법은 1세기 동안 한 번도 틀린 적 없는 권력승계의 지표였다”고 촌평했다.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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