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다피의 종말]총성도 멎기 전… “석유 선점” 열강 아우성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8월 24일 03시 00분


리비아 이젠 석유 전쟁터… 伊, 기술진 파견 등 선수 쳐
반군에 잘 보이기 경쟁… “정상 생산 3년 걸릴 것”

리비아 내전이 종식되기 전인데도 주요국 정부와 석유 메이저들이 리비아 원유 생산시설을 사전 확보하기 위한 물밑 전쟁에 들어갔다.

리비아 원유 생산이 재개되려면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지만 리비아로부터 수입량이 많은 국가들은 벌써부터 반카다피군 측 줄대기에 나섰다. 주요 증시도 리비아 원유생산 재개에 따른 유가 하락으로 인플레이션 압력이 줄어들 것이라는 점과 리비아 재건사업에 따른 투자 수요가 늘 것이라는 기대감에 소폭 상승했다.

원유 수입량의 20%를 리비아에서 들여오고 있는 이탈리아가 선수를 쳤다. 이탈리아 최대 석유회사인 에니(ENI)사는 내전 발발 직전까지 리비아의 가장 큰 원유생산시설을 가동해왔다. 프랑코 프라티니 이탈리아 외교장관은 22일 국영방송에 출연해 “에니는 앞으로도 북아프리카에서 1등을 유지할 것”이라며 “이미 에니의 기술진을 생산시설 재가동을 위해 리비아 동부로 보냈다”고 말했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도 이날 반군 과도국가위원회 무스타파 압둘 잘릴 의장을 엘리제궁으로 초청한 자리에서 프랑스에서 리비아가 차지하는 중요성을 역설했다. 구체적으로 원유를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사전 로비 성격도 숨어 있다는 게 외신들의 분석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리비아의 하루 원유 생산량은 155만 배럴로 이 중 80%를 수출한다. 이탈리아 에니, 프랑스의 토탈, 영국의 BP 등이 현지에 생산시설을 갖고 있어 ‘글로벌 석유 메이저의 각축장’으로 불린다.

이들이 일찌감치 원유 생산시설 확보에 나서는 것은 기존 카다피 정권과 맺은 생산 계약이 무효가 되면서 정권을 장악할 반군 측과 재계약을 해야 하기 때문. 반군 측은 벌써부터 상대국들을 아군과 적군으로 가르며 세를 과시하고 있다. 반군 측 석유회사인 아고코의 압둘잘릴 마유프 대변인은 22일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탈리아와 프랑스, 영국과 같은 서방국가는 별 문제가 없지만 러시아 중국 브라질과는 정치적인 이슈가 남아 있다”고 말했다. 금수(禁輸)조치에 미온적으로 협조했던 중국과 러시아는 반군이 장악할 경우 불이익을 받을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하지만 원유 생산이 재개되고 리비아가 정치적 안정을 찾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려 원유 확보전이 너무 이르다는 지적도 많다. 글로벌 석유컨설팅업체인 우드매켄지는 보고서에서 “리비아가 내전 이전 수준으로 석유를 생산하려면 3년이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리비아의 원유생산 재개는 유가를 떨어뜨려 글로벌 인플레이션을 진정시키는 데 기여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특히 휘발유 가격이 경제회복의 발목을 잡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인플레이션 우려를 덜면서 3차 양적완화 조치 카드를 빼들 수 있어 운신의 폭이 넓어질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주요 기업도 글로벌 경제의 주요 악재 중 하나였던 북아프리카 중동 정세가 안정을 찾게 되면 세계 경제도 실낱같은 희망을 찾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뉴욕=박현진 특파원 witnes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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