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日本 대지진]우리 원전은 괜찮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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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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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원자력 ‘큰 사고’ 없었지만… ‘안전불감증’ 우려
작년 12월 신고리2호기 고장… 냉각펌프서 ‘나사’ 빠져… ‘안전’ 관련 훈포장 한명도 없어

“딸그락∼ 딸그락.”

지난해 12월 2일. 부산 기장군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2호기는 시범 운용을 위해 가동에 들어갔다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서 가동을 멈췄다. 정상적으로 가동될 때는 들을 수 없는 소음이 들렸기 때문이다. 이 시험은 원자로에 핵연료를 넣기 전에 하는 마지막 점검으로 원자로가 고온을 견딜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한 것이다.

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은 원자력발전소의 핵심 장치인 냉각펌프에서 ‘나사’ 하나가 빠지면서 장비 일부를 마모시킨 것으로 결론 내렸다. 운용 허가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된 시험이라 다행히 원자로에 핵연료봉은 장전되지 않았다. 만일 노심에 핵연료를 넣고 가동했다면 후쿠시마 원전처럼 고열에 의한 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위험천만한 상황이었다. 신고리 2호기는 문제점을 수정하고 12월에 준공할 계획이다.

○ 최근 6개월간 ‘백색비상’ 2회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은 신고리 2호 사고 외에 최근 6개월간 심각한 사고가 3차례 더 있었다. 이 가운데 방사성 물질 누출 시 발령되는 백색 비상은 2차례였다. 방사선 관련 ‘비상’은 백색비상, 청색비상, 적색비상 등 3단계로 나뉜다. 원자로가 있는 건물 내부에만 영향을 미치면 ‘백색비상’, 시설 용지에까지 미치면 ‘청색비상’, 용지 밖까지 영향을 주면 ‘적색비상’이 발령된다.

지난해 9월 17일에는 시험가동 중인 신고리 1호기에서 사고가 일어났다. 원자로 냉각수의 밸브가 자동으로 열리는 사고가 발생해 냉각수 일부가 격납건물 내부로 유출되면서 백색비상이 발령됐다. 신고리 1호기는 문제점을 고치고 지난달 28일 상업운용에 들어갔다.

올해도 벌써 두 건의 원자력 관련 사고가 있었다. 지난달 4일에는 전남 영광원전 5호기의 발전이 중지됐다. 원인은 원자로 냉각재 펌프(RCP) 구동용 모터 안에서 약 30cm 길이의 ‘일(一)자’ 드라이버가 들어 있던 것으로 밝혀졌다. 시운전 때 작업자가 실수로 드라이버를 빠트린 어이없는 해프닝이었다. 같은 달 20일 대전 대덕연구단지 내 한국원자력연구원의 연구용 원자로인 ‘하나로’에서도 백색비상이 발령돼 직원들이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원자로 수조 아래 잠겨 있던 알루미늄 통이 수면 위로 떠올라 원자로 상부의 방사선량이 크게 증가했다. 원인은 장치 마모로 드러났다.

○ 기술적 문제보다 ‘안전불감증’이 원인

1978년 4월 29일 국내 최초 상업용 발전소인 고리 1호기가 운전을 시작한 이후로 큰 사고를 겪지 않는 등 우리나라는 원자력 안전에 대해서는 강국에 속했다. 윤철호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원장은 “한국 원자력계는 그동안의 성과가 좋아서 자신감을 갖고 일을 해왔지만 이런 자신감이 지나쳐 ‘자만심’이 되지 않았나 우려된다”고 말했다. 교과부 원자력안전과 백민 과장은 “해외에서는 원자력 발전 20∼30년마다 사고가 발생하는 경향이 있었다”며 “비록 큰 사고가 없었지만 우리도 꼼꼼하게 살펴볼 때”라고 말했다. 최근 6개월간 일어난 사건도 안전 원칙만 꼼꼼히 챙겼더라면 막을 수 있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한국 원자력은 100% 안전하다’는 오만함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정부는 2009년 12월 27일 아랍에미리트(UAE)에 원전 수출을 한 날을 기념해 ‘원자력 안전 및 진흥의 날’을 제정한 뒤 지난해 같은 날 행사를 치렀다. 명목상은 ‘안전+진흥’이지만 훈포장 48명 중 ‘안전’과 관련된 인력은 한 명도 없었다. 2008년에는 예산 때문에 기획재정부가 원자력 운용 인력을 6조 3교대에서 5조 3교대로 줄이려 했지만 교과부와 지식경제부의 반대로 무산된 적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는 “원전 수출 이후 ‘안전’을 얘기하면 발목을 잡는 것으로 보는 시선이 있다”고 말했다.

국내 원전의 안전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안전’을 전담하는 ‘원자력안전위원회’를 설치하는 등 권한을 강화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김경민 한양대 정치학과 교수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계기로 혹시라도 빠진 부분이 있는지 철저히 점검하고 보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규태 동아사이언스 기자 kyouta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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