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동반 美하원 권력이양식, 이 아이들이 본 건…절제-화합-축제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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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너 하원의장 취임식 가보니

“존 베이너!”

“낸시 펠로시!”

5일 문을 연 112회 미 의회는 개원식과 함께 새 하원의장을 뽑는 투표를 했다. 11월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압승해 하원의장 자리는 존 베이너 의원에게 사실상 일찌감치 낙점됐지만 이날 공개투표 절차를 거쳐야 했다. 신임 하원의장 투표는 오랜 전통대로 ‘롤 콜(Roll Call)’ 방식으로 진행됐다. 직접 일어서서 자신의 이름을 대고 지지 후보를 외치기 때문에 누가 어떤 후보를 지지했는지 바로 알 수 있다. 이름만 거명하지 않고 이유까지 대는 의원도 적지 않아 투표 시간은 예상보다 길게 이어져 1시간가량 진행됐다.

의원 외에 일반인의 입장을 엄격히 제한하는 하원 전체회의장에는 평소와 달리 어린아이가 눈에 많이 띄었다. 이날 하루만은 가족을 동반해 개원식에 참석하는 것이 허용됐다. 평소 엄숙한 분위기와 달리 이날 의사당은 축제 분위기로 들떠 있었다. 신임 하원의장 선거에서 손자와 손녀를 옆자리에 앉힌 채 자리에 같이 앉은 의원이 적지 않았다. 1층 전체회의장에 들어가지 못한 가족은 2층 내빈석에서 새 의회 개원을 축하했다. 낸시 펠로시 전 하원의장도 이날 손자 손녀를 옆에 앉히고 투표 장면을 지켜봤다.

차기 하원의장으로 사실상 확정된 베이너 의원이 투표장에 나타나지 않은 반면 펠로시 의원은 자신의 이름을 호명한 의원과 일일이 눈을 맞추면서 감사를 표시했다. 투표 결과는 베이너 241표, 펠로시 173표. 민주당 의원 중 펠로시 의원을 지지하지 않는 19명이 펠로시 의원을 호명하지 않고 다른 의원의 이름을 부른 결과였다.

베이너 신임 하원의장이 확정되자 여야 의원 구분 없이 모두 일어나 환호와 함께 기립박수를 쳤다. 공화당 의석에선 서로 부둥켜안고 4년 만의 하원 탈환을 자축했다. 민주당 의석에서도 박수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오후 2시 10분경 베이너 의장이 회의장으로 들어설 때는 펠로시 전 의장과 공화당 민주당 지도부가 모두 함께 뒤따라 입장했다. 가족들도 모두 일어서 기립박수를 치며 축제분위기를 달구었다. 베이너 의장은 통로에 길게 늘어선 여야 의원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고 포옹했다. 하원의장 자리를 내준 민주당 의원들도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환호와 박수는 10분 이상 이어졌다. 당장 향후 국정 의제를 놓고 팽팽하게 대치하는 여야이지만 이 순간만큼은 공화당과 민주당이 따로 없는 ‘하나 된 자리’였다.

하원 권력이 교체되는 이날 행사의 절정은 펠로시 전 의장이 베이너 신임 의장에게 의사봉을 넘겨줄 때였다. 펠로시 전 의장은 2층 내빈석에 앉아 있는 자신의 남편 폴 펠로시를 소개했고 이어 베이너 의장의 부인 데비 베이너 여사와 두 딸 린지, 트리셔를 일으켜 세웠다. ‘울보’ 아버지를 닮은 두 딸은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훔치며 아버지의 하원의장 취임을 축하했다. 펠로시 전 의장이 베이너 의장 부인을 소개하는 순간 베이너 의장은 끝내 울음을 참지 못하고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쳤다. 의사봉을 넘겨준 펠로시 전 의장은 단상에서 베이너 신임 의장과 포옹하면서 축하했고 베이너 의장도 펠로시 전 의장의 뺨에 입을 맞췄다.

베이너 의장은 취임 연설에서 “이제 하원의장이 됐지만 여전히 나는 술집을 운영하는 아버지의 아들이며 12형제 중의 한 명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오하이오 주 남쪽 끝자락의 레딩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조그만 술집을 운영하는 부모의 12남매 가운데 둘째로 태어났다. 지난해 중간선거 후 “방과 후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마치 보육원에 들어가는 것과 같았다”며 어린 시절의 기억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의사봉을 넘겨준 펠로시 전 의장은 의원석에서 다른 의원과 똑같이 앉아 신임 의장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한국 국회 본회의장 자리 배치가 다선의원순으로 뒤에 앉는 반면에 미 하원 의사당은 백발이 성성하고 지팡이를 짚은 다선 의원들이 맨 앞자리를 잡아 이날 회의장의 무게를 더했다.

워싱턴=최영해 특파원 yhchoi65@donga.com

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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