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광원들 69일만에 구조]‘규율반장’과 ‘정신적 지주’… 그들 덕에 버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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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0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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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책임자 우르수아… 식량 분배하며 기강 잡아…구조는 마지막 순서 자청내달 퇴직 63세 고메스… 극한 경험담 들려주며 위로… 결혼 31년만에 연애편지도

두 달 이상 무너진 광산에 갇혀 있던 칠레 광원 33명에게 주어진 행운은 두 명의 든든한 동료가 있었다는 점이다. 외신은 사고 당시 현장책임자였던 루이스 우르수아 씨(54)와 가장 나이가 많은 마리오 고메스 씨(63)가 동료들의 정신적 지주였다고 전했다.

가장 마지막에 구조되겠다고 자청한 우르수아 씨는 갱도가 무너진 뒤 그들의 생존이 알려진 8월 22일까지 17일 동안 기민한 판단력과 카리스마로 나머지 32명의 생명을 사실상 책임졌다고 외신은 전했다. 그는 사고가 나자 갇힌 공간을 작업, 취침, 위생 세 부분으로 나눠 광원들을 각각 배치하고 규율을 다잡았다. 얼마 남지 않은 식량을 놓고 동료끼리 다투지 말라고 독려하기도 했다. 참치를 광원들에게 48시간에 한 술씩 나눠주며 지상에서 음식이 내려오기 전까지는 음식에 마음대로 손을 대서는 안 된다고 기강을 잡았다. 이런 리더십 때문에 동료 사이에서 그는 ‘전사(Don Lucho)’로 통했다. 한 심리학 전문 웹사이트는 그를 ‘투지 있는 리더’의 전형이라고 칭송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보다 동료를 앞세우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구조 시작 전날인 12일 영국 일간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우르수아 씨는 “내 동료는 정말 탁월한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11월 퇴직을 앞두고 있던 고메스 씨는 뉴욕타임스가 ‘동료들 사이에서 정신적 수호자’로 불린다고 보도했을 정도였다. 광원의 아들로 태어나 12세부터 갱도에서 일한 경험을 통해 불안해하는 동료를 다독였다. 30대 시절에는 잠깐 밀항을 시도한 경험이 있다. 당시 11일 동안 밀항선 바닥에서 초콜릿과 갑판 사이로 떨어지는 물방울을 신발에 받아 마시며 생존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지하에 예배공간을 마련했고 생존 소식이 외부에 알려진 다음에는 지상의 심리카운슬러가 다른 동료의 심리상담을 하는 것을 돕기도 했다.

결혼생활 31년 동안 아내 릴리아네트 라미레스 씨에게 별다른 사랑표현을 하지 않았던 그였지만 아내에게 절절한 연애편지를 보내 세계인의 눈물을 자아내기도 했다. 혼인신고만 하고 살아온 이 부부는 동료 광원과 가족을 모두 초청해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다.

고메스 씨는 이날 아홉 번째로 구조됐다. 그는 캡슐에서 내린 뒤 품에서 매몰 광원 33명이 모두 서명한 칠레 국기를 꺼내 흔들었다. 국기를 든 그의 왼손은 세 손가락밖에 없었다. 50년 광원 경험이 그의 엄지와 검지를 앗아갔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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