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혁명동지의 사랑, 감옥서 열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8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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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 75세 반군 지도자 65세 신부와 옥중결혼

종신형을 선고받은 페루의 공산반군 지도자가 체포된 지 18년 만에 옥중 결혼식을 올렸다.

AP통신에 따르면 페루의 공산주의 게릴라 반군 ‘빛나는 길’의 지도자인 아비마엘 구스만(75)은 20일 그의 오랜 애인이자 동지인 엘레나 이파라기레(65)와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식장은 수도 리마 서쪽의 칼라오 해군기지 감옥.

‘빛나는 길’ 지도자의 서열 2위까지 올랐던 이파라기레는 이날 결혼식을 위해 복역 중인 산타모니카의 여성교도소에서 이송됐다.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15분간 간단한 혼례 절차가 진행됐다.

이들은 1980년 반군 활동을 시작해 함께 조직을 이끌다가 1992년 체포돼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마오주의를 신봉하는 이 테러단체의 무장투쟁이 격화되면서 약 6만9000명이 사망할 정도로 피해가 컸으나 지도자들이 대거 체포된 이후 조직력이 크게 약화한 상태다.

구스만은 체포된 이후 11년간 이파라기레와 같은 감옥에 수감돼 있었다. 그는 이파라기레가 여성교도소로 이감된 이후 면회가 불가능해지자 결혼식을 요구해왔다. 교정 당국이 이를 허가하지 않는 것에 반발해 올해 4월 이파라기레와 함께 단식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결국 알란 가르시아 페루 대통령이 “아무리 극악한 범죄자라도 인간으로서의 권리는 인정받아야 한다”며 이를 승인하면서 황혼의 결혼식이 성사됐다. 뒤늦게 백발의 신랑 신부가 된 두 사람은 친지들과 간단한 대화를 나눈 뒤 다시 각자의 감방으로 옮겨졌다. 감옥살이를 시작한 이후 18년간 기다려온 행사는 그렇게 끝이 났다.

두 사람의 대면에 난색을 표시해온 교정 당국은 결혼식 이후 두 달에 한 번 정도 만남을 허가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라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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