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할 때 등돌린 리더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8월 20일 22시 12분


코멘트
비록 최근 '연기자'라는 비판도 나왔지만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는 큰 재해가 발생하면 곧장 현장으로 달려간다. 많은 중국인이 그를 아끼고 칭송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리더가 이런 건 아니다. 미국 국제관계전문 격월간지 포린폴리시는 19일 인터넷판에서 '최근 대중이 가장 필요로 하는 위기에 오히려 이들을 등진 리더' 5명을 꼽았다.

이달 초 펀자브 주에서 파키스탄 사상 최악의 홍수가 나서 1000여 명이 숨지고 2000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는데도 아시프 알리 자르다리 대통령은 유럽 순방을 떠났다. 보다 못한 우방국인 미국의 고위관료가 직접 자르다리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순방 중단을 요청했지만 그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결국 영국에서는 자국인 망명자에게서 항의의 표시로 신발 투척 세례를 받았고 파키스탄 내부에서도 그의 무신경함을 비난하는 소리가 높아졌다. 그는 순방 마지막 날인 18일 러시아에서 러시아 아프가니스탄 타지키스탄 정상과 회의를 마친 뒤 점심은 취소하고 귀국했다.

사상 최악의 산불을 맞은 러시아 모스크바 시민도 지도자복(福)이 없긴 마찬가지다. 지난달 말부터 러시아 중서부 지역에서 발생한 대규모 산불 때문에 모스크바는 짙은 연기로 뒤덮였다. 사망률은 평소보다 2배 늘어 하루 평균 700명이 숨졌다. 이때 유리 루즈코프 시장은 운동하다 다친 부위를 치료한다며 오스트리아에서 휴가 중이었다. 성난 모스크바 시민들이 '시장 퇴진'을 들고 나오자 마지못해 돌아온 그는 열흘 뒤인 18일 다시 남은 휴가를 떠났다.

고국 아이티의 대통령이 되겠다며 후보 등록서류를 제출한 미국의 힙합스타 와이클레프 장도 지지자의 성원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올 초 사상 최악의 지진으로 황폐화한 고국을 재건하겠다고 큰소리쳤던 장은 그러나 이번 주 내내 아이티 거리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살인 협박을 받아 모처에 숨어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이티 선거관리위원회가 20일 발표할 최종후보에 그가 오를지조차 회의적이라고 한다.

미국 멕시코 만에서 최악의 원유 유출사고를 낸 영국 석유회사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의 전 최고경영자(CEO) 토니 헤이워드도 '나 몰라라'로 일관한 리더다. 원유 유출이 점점 확산되던 5월 "내 생활을 되찾고 싶다"며 엉뚱한 말을 해대더니 6월에는 급기야 영국 남부 해안으로 요트여행을 떠나 갑부들과 파티를 벌였다. BP이사회는 7월 그를 해임했다.

영국 최대노동조합 유나이트의 토니 우들리 위원장도 만만치 않다. 유나이트에 소속된 브리티시에어라인(BA) 승무원 노조가 6월, 5일 간의 총파업을 벌이고 있을 때 그는 가족과 함께 사이프러스 한 섬에 있는 별장으로 유유히 휴가를 떠났다. BA노사협상의 결과를 기다리며 영국 전역의 공항에서 발이 묶인 승객들이 발을 동동 구를 때 그는 별장에 딸린 수영장에서 지중해를 바라보며 수영을 즐겼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