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요르단 강 서안의 소도시 예닌에서 5일 특별한 영화제가 사흘 일정으로 개막했다. 개막식에 참가한 사마흐 가드반이라는 18세 이스라엘 소녀가 무대에 나섰을 때 살람 파야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총리를 포함해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한순간 숙연해졌다. 소녀의 심장은 원래 한 팔레스타인 소년의 것이었다. 소년의 이름은 아흐메드. 그는 12세 때인 2005년 장난감 총을 들고 나섰다가 진짜 총으로 오인한 이스라엘 병사에게 사살됐다. 소년의 아버지는 아들의 장기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어린이에게 기증했다.
이번 영화제의 첫 상영작은 ‘예닌의 심장’. 바로 아흐메드와 그의 아버지 이스마일 카티브 씨(46)의 사연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독일의 영화제작자 마르쿠스 페터 감독이 제작한 예닌의 심장은 올해 독일영화상 최우수다큐작품상을 수상했으며 에미상 후보로도 지명됐다. 지난해 10월 한국에도 건너와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의 첫 상영작이 되기도 했다.
이날 이스라엘 소녀와 다큐멘터리 못지않게 사람들의 관심을 끈 것은 영화제가 열린 영화관이었다. 2000년 제2차 팔레스타인 무장봉기(인티파다)가 시작된 뒤 예닌은 이스라엘군과 팔레스타인 무장조직 사이의 가장 치열한 격전지로 변했다. 2002년에만 이 도시에서 54명의 팔레스타인인과 23명의 이스라엘 병사가 사망했다. 이후 수년간 영화관은 팔레스타인 무장조직이 이스라엘에 폭탄테러를 할 조직원들을 파견하는 거점으로 활용됐다. 1957년 문을 연 영화관은 1987년 1차 인티파다 때 이미 문을 닫은 상태였다.
23년간 방치됐던 영화관이 다시 살아난 데는 페터 감독의 노력이 컸다. 아흐메드의 사연을 촬영하기 위해 2년 전 현지를 방문했던 페터 감독은 인구 4만 명의 도시에 영화관이 하나도 없는 것을 보고 극장을 재건립하기로 결심했다. 독일 정부에서 43만 달러를 기증하는 등 모두 100만 달러의 재건축 비용이 모금됐고 300명 이상의 팔레스타인 및 여러 나라 자원자들이 힘을 보탰다. 그 결과 335석의 실내 영화관과 700석의 야외극장, 카페, 도서관, 더빙 스튜디오까지 갖춘 현대적인 극장이 태어났다. 요르단 강 서안의 몇 안 되는 영화관 중 가장 시설도 좋고 규모도 크다. 이날 영화제를 찾은 대다수 젊은 팔레스타인 청년들은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영화를 본 적이 없다.
페터 감독은 영화관 개관을 계기로 팔레스타인 전사들의 거점이던 이 도시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화합을 도모하고 경제가 번창하는 본보기 도시로 변하길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인들의 마음속 분노가 아직은 너무 크다. 현지에 사는 자카리아 주바이디 씨(33)는 AFP와의 인터뷰에서 “영화관이 생기고 주민들의 삶이 일상으로 돌아간다고 해서 이스라엘에 대한 분노도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나도 유대인에게 아무 감정도 없고 상황에 따라 내 심장도 떼 줄 수 있지만 그럼에도 그들이 계속 우리를 점령한다면 반대로 심장을 빼앗아올 것이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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