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꽉막힌 여성” 유권자 비난 발언 전국에 방송… 英총리 총선 앞두고 대형사고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4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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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켜진줄 몰라집까지 찾아가 사과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가 자신의 말실수에서 비롯된 구설수에 휘말렸다. 총선을 일주일 앞둔 집권 노동당이 ‘최대 악재’라며 전전긍긍할 정도로 핵폭탄급 구설수다.

29일 영국 언론에 따르면 브라운 총리는 전날 그레이터맨체스터 지역 로치데일에서 선거운동을 벌이다 66세 여성 연금생활자인 질리언 더피 씨를 만났다. 두 사람은 재정적자, 교육, 이민 문제에 대해 5분 정도 이야기를 나눴다. 특히 더피 씨가 “동유럽 사람들이 떼로 몰려오고 있다”며 대책을 집요하게 캐묻자 브라운 총리는 잠시 곤혹스러워했다.

탈은 그 뒤에 났다. 브라운 총리는 전용차에 타자마자 옆자리 전략공보국장에게 “이번 대화는 재난(disaster)이었다”며 “꽉 막힌 여성(a bigoted woman)이야. 과거에 노동당 당원이었다고 하는데 말도 안 돼(ridiculous)”라고 털어놨다. 자신의 셔츠에 뉴스전문 케이블방송 스카이뉴스가 취재용 무선 핀 마이크를 달아놨다는 사실은 깜박 잊은 채였다. 브라운 총리의 육성은 전파를 타고 영국 전역에 퍼졌다. ‘비거티드(bigoted)’는 영국에서 이민이나 인종 문제에 편협하다는 뉘앙스를 담고 있는 말로, 상당히 부정적인 표현이다.

이날 일정에 따라 BBC 라디오2 방송에 출연한 브라운 총리는 녹음된 자신의 말을 듣자 당혹감과 수치심으로 일그러진 얼굴을 손으로 가리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더피 씨에게 전화를 걸어 사과했다. 이날 브라운 총리는 더피 씨와 노동당 당원들에게 모두 여섯 번 사과를 했다. 29일 저녁에 있을 마지막 TV토론 준비에 바쁘던 노동당은 긴급 대책회의를 열었다. 브라운 총리는 더피 씨의 집으로 찾아가겠다고 고집했다.

당황하기는 더피 씨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집으로 찾아온 기자들이 브라운 총리의 발언을 전하자 “농담이겠지…”라고 했다. 그러나 녹음테이프를 듣자 깜짝 놀라며 “소름이 끼친다. 왜 내가 꽉 막혔느냐. (노동당에) 투표할 생각이 없다”고 분개했다.

더피 씨와 40여 분 대화를 나눈 뒤 더피 씨의 집을 나온 브라운 총리는 “깊이 뉘우쳤고 용서를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더피 씨는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일부에서는 “만약 용서를 했다면 둘이 같이 모습을 드러냈을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영국 언론은 “노동당의 선거운동이 위기에 처했다”고 입을 모았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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