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리타공항서 길을 잃다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1월 17일 14시 36분


이란인 메르한 카리미 나세리 씨(67)는 1988년부터 2006년까지 프랑스 샤를드골국제공항 제1터미널에서 살았다. 1977년 이란의 샤 정권에 항거하다 추방당한 그는 프랑스 이곳저곳을 떠돌다 1988년 영국으로 가려고 드골공항에 왔지만 여권을 분실했다. 무작정 런던행 비행기에 올랐지만 영국 이민국은 그를 드골공항으로 되돌려 보냈다. 갈 곳이 없어진 그의 공항 생활은 그때부터였다. 그의 이야기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터미널(2004년)'의 모티브가 됐다.

2009년 11월 4일 일본 나리타(成田)국제공항에 나세리 씨와 같은 처지의 중국인이 나타났다. 20년 전 6월 중국 톈안먼 사태에 참여했던 인권운동가 펭젱후(Feng Zhenghu·55) 씨는 4일부터 나리타공항 터미널에서 먹고 자고 있다. 나세리 씨가 어쩔 수 없이 공항에 발이 묶였다면, 펭 씨는 스스로 공항을 택했다는 점이 다르다.

펭 씨는 3일 전일본항공(ANA)편으로 상하이 푸둥(浦東)국제공항에 도착했지만 상하이 경찰당국은 그의 입국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를 태우지 않으면 푸동공항을 이륙할 수 없다는 경찰당국의 경고에 ANA측은 뿌리치는 펭 씨를 억지로 비행기에 태우고 일본으로 되돌아 왔다. 펭 씨는 나리타공항을 빠져나가기를 거부했다. 그는 17일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사실상 납치돼 다시 일본으로 돌아온 것은 나로서도, 중국으로서도 수치다"라며 "내가 일본에 머물러야 할 이유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중국 정부의 '탄압'과 ANA의 '눈치 보기'에 대한 공항 1인 시위를 시작한 셈이다.

AF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펭 씨는 톈안먼 사태 이후 중국 공안당국의 탄압을 피해 1990년대 초 일본으로 이민을 떠났다. 1999년 상하이로 되돌아온 펭 씨는 컨설팅 회사를 차렸다. 하지만 2001년 상하이 공안당국에 '불법 사업' 혐의로 체포돼 3년 징역형을 선고받고 2004년 풀려났다. 이후 펭 씨는 국제사면위원회(엠네스티)가 인정하는 저명한 인권운동가가 됐다. 올해 4월 일본인과 결혼한 여동생을 방문하러 상하이를 떠나 일본에 온 펭 씨는 이번을 포함해 8번이나 상하이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매번 뜻을 이루지 못했다. 네 번은 상하이 당국이 입국을 거부했고, 네 번은 일본 항공사가 그의 탑승을 거부했다.

펭 씨는 나리타공항의 도착 게이트와 입국심사대 사이 보안구역에서 앞면에는 '납치(kidnapped)', 뒷면에는 '불의(不義·injustice)'라고 스스로 쓴 흰색 티셔츠를 입고 '농성'을 하고 있다. 셔츠에는 '조국에서 쫓겨난 시민', '베이징은 부끄러운 줄 알라' 등의 글귀도 적어 넣었다. 입국심사대를 통과하지 않았기 때문에 식당이나 상점을 이용할 수도 없어 수돗물과 여행객이 건네주는 주전부리로 초반 열흘을 버텼다. 13일에야 비로서 그를 지원하는 홍콩 시민단체 회원이 컵라면과 비스킷 등 일주일치 식량과 전기주전자를 갖다 줬다. 언제까지 공항에 머물지 펭 씨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다만 그는 "ANA가 나를 다시 상하이로 데려다주겠다고 약속하지 않으면 일본 땅을 밟지 않겠다"고 말했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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