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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년 8월 10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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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0 일본 총선에서 1955년 이후 사실상 처음으로 정권교체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정권교체가 이뤄질 경우 차기 총리가 될 것으로 보이는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민주당 대표가 ‘나의 정치철학(우애론)’이라는 제목의 글을 동아일보에 기고했다. 이 기고문은 10일 발매되는 일본 월간지 ‘보이스’ 9월호에도 동시 게재된다. 하토야마 대표는 이 글에서 우애(友愛)철학을 통해 더불어 사는 사회를 구현하고 나아가 동아시아 공동체를 창조하고 싶다고 밝혔다. 또 일본을 어떻게 이끌어 나갈지, 미국 중국 등과 어떤 외교관계를 정립해 갈지에 대해서도 썼다. 다음은 기고문 요약.》
과잉 민족주의 극복할 규칙 필요… 글로벌 환경속 독자성 유지 ‘숙제’
‘우애’ 이념, 나의 정치적 나침반
○ 하토야마 이치로의 기치
우애는 프랑스혁명의 슬로건인 ‘자유, 평등, 박애’의 박애(fraternit´e)를 가리킨다. 조부 하토야마 이치로(전 총리·1955년 자민당 창당 주역)가 쿠덴호페칼레르기(20세기 초 유럽통합주의자)의 저서 ‘Totalitarian State Against Man’(전체주의 국가 대 인간·1935년)을 번역 출판했을 때 ‘fraternit´e’를 ‘우애’로 번역했다. 우애가 없으면 자유는 무정부 상태의 혼란을 부르고 평등은 폭정을 부른다. 자유와 평등은 인간에게 중요한 가치이지만 그것이 원리주의에 빠질 때는 참화로 이어진다. 균형을 도모하는 이념이 바로 우애다. 하토야마 이치로는 제2차 세계대전 후 기세를 더하는 사회당과 공산당에 대항하면서 한편으론 관료파 요시다 시게루(전 총리·아소 다로 총리의 외조부) 정권을 타도하는 기치로 우애를 내걸었다. 그 상징이 1965년 ‘자민당 기본헌장’이다. 제1장은 ‘인간은 항상 그 자체가 목적이며 결코 수단이어서는 안 된다’고 규정했다.
○ 자민당 일당 지배의 종언과 민주당 창당선언
전후 자민당이 안팎의 사회주의에 맞서고도 경제성장에 힘쓴 것은 큰 공적이다. 그러나 냉전 종결 후에도 경제성장 자체가 국가 목표라는 타성에 빠져 변화하는 시대환경 속에서 국민 생활의 질적 향상을 위한 정책을 펼치지 못했다. 정치-관료-경제의 유착이 가져온 정치 부패는 자민당의 지병이 됐다. 나는 냉전 종결과 함께 자민당의 역사적 역할도 끝났다고 통감했다. 조부가 만든 자민당을 탈당해 신당 사키가케를 창당했고 1996년 민주당을 설립했다.
그리고 13년이 지났다. 일본은 미국발(發) 글로벌리즘이라는 시장원리주의에 농락당했다. 자유의 경제적 형식인 자본주의가 원리주의에 매몰되면 인간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 된다. 금융위기 이후 우리는 이를 깨달았다. 도의와 절도를 상실한 금융자본주의, 시장지상주의에 어떻게 브레이크를 걸어 국민경제와 국민생활을 지킬 것인지가 우리의 과제다. 5월 민주당 대표선거에서 나는 “더불어 사는 ‘우애사회’를 만들기 위해 정권교체를 이루고 싶다”고 말했다. 나에게 우애는 정치의 나침반이며 정책결정의 판단 기준이다. 그리고 우리가 지향하는 ‘자립과 공생의 시대’를 떠받치는 시대정신이다.
○ 쇠약한 공(公)의 영역을 부흥
일본에선 글로벌리즘을 적극 받아들여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자는 쪽과 사회안전망의 충실이나 국민경제 전통을 지키려는 쪽으로 나뉘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정권 이래의 자민당은 전자이며 민주당은 후자다. 각국의 국민경제는 오랜 세월 전통과 관습, 국민생활의 실태가 반영된 것이다. 경제규모와 발전단계도 다양하다. 글로벌리즘은 이를 무시한 채 진행됐다. 냉전 후 일본 사회는 글로벌경제가 국민경제를, 시장지상주의가 사회를 파괴해 온 과정이다. 농업 환경 의료 등 생명과 안전에 관련되는 경제활동을 글로벌리즘에 내던지는 정책은 용서할 수 없다. 사람 간의 유대, 자연과 환경에 대한 배려, 복지와 의료제도의 재구축, 교육과 보육환경의 충실, 격차 시정을 통해 ‘국민이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환경을 정돈하는 것’이 정치의 책임이다.
현대 경제사회에는 ‘관(官)’ ‘민(民)’ ‘공(公)’ ‘개인(個人)’의 구분이 있다. 공은 반상회나 비영리단체(NPO)와 같은 상호부조적인 활동이다. 경제사회가 발달할수록 행정 기업 개인의 손이 닿지 않는 부분이 커진다. 선진국에서 NPO의 역할이 큰 것은 이 때문이다.
○ 지역주권국가의 확립
글로벌 경제환경 속에서 국가 또는 지역의 독자성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는 일본에도 큰 과제다. 개인이 해결할 수 없는 것은 가정이 돕고, 가정이 할 수 없는 것은 지역사회나 NPO가 돕는다. 여기서도 해결할 수 없으면 행정이 개입한다. 마찬가지로 기초자치단체가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기초단체가 한다. 기초단체가 못하는 것만 광역단체가 한다. 광역단체가 못하는 외교, 방위, 매크로 경제정책 등은 중앙정부가 담당한다. 나는 민주당 대표 선거연설 때 이렇게 말했다. “나라의 역할을 외교·방위, 재정·금융, 자원·에너지, 환경 등에 한정한다. 생활에 직결된 것은 권한과 재원, 인재를 기초단체에 이양하는 구조로 변혁한다. 중앙과 지방의 관계를 상하에서 병렬관계, 역할분담의 관계로 바꾼다.”
○ 민족주의를 억제한 동아시아 공동체
우애가 지향하는 또 하나의 국가목표는 동아시아 공동체의 창조다. 일미 안보체제는 앞으로도 일본 외교의 기축이지만 아시아 국가로서 정체성을 잊어서는 안 된다. 미국과 중국의 틈에서 어떻게 정치경제적 자립을 유지하면서 국익을 지킬 것인가, 이는 일본과 아시아 중소규모 국가의 공통된 고민이다.
초국가적 정치경제 이념인 마르크스주의와 글로벌리즘이 좌절한 지금, 다시 민족주의가 국가의 정책을 좌우하는 시대가 됐다. 각국의 과잉 민족주의를 극복해 경제협력과 안전보장의 규칙을 만들어 가야 한다. 동아시아 경제 통합은 고도 경제성장의 연장선상에서 아시아 공통통화의 실현을 목표로 해야 한다. 각국의 역사적 문화적 대립과 안전보장 등 정치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다. 군사력과 영토 등 지역통합을 저해하는 문제는 일중, 일한 등 양국 간 교섭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워 이야기할수록 민족주의의 격화를 부를 수 있다. 나는 아시아 경제 통합과 집단적 안전보장제도의 확립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일본 헌법의 이상인 평화주의와 국제협조주의를 실천하는 길이며 미중 양국 사이에서 일본의 정치경제적 자립을 지켜 국익에 이바지하는 길이라고 믿는다. 아시아 공통통화의 실현에는 10년 이상 필요할 것이다. 정치통합까지는 또 새로운 세월이 필요하다. 세계가 혼돈스럽고 불안정한 만큼 정치는 높고, 큰 목표를 내걸고 국민을 이끌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하토야마 유키오 민주당 대표:
△1947년 도쿄 출생 △1969년 도쿄대 공학부 졸업 △1986년 중의원(홋카이도) 당선 △1993년 신당 사키가케 창당, 관방성 차관 취임 △1996년 민주당 창당 △2005년 민주당 간사장 취임 △2009년 민주당 대표 취임(5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