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이기홍]사회적 뇌관을 다루는 방식

  • 입력 2009년 8월 3일 02시 55분


“우린 집회 참가 인원을 집계하지 않습니다.”

지난달 워싱턴의 상징 광장인 내셔널몰을 관리하는 국립공원국을 방문했을 때다. 벽에 버락 오바마 대통령 취임식 때 광장에 운집한 군중을 찍은 항공사진이 있기에 “200만 인파가 장관을 이뤘다”고 인사말을 건넸는데, 공보 책임자는 “200만이란 숫자는 우리와 무관하다”며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그는 “어떤 집회든 참가자 수는 정치적 함의를 지닌다. 그걸 발표하면 이해 당사자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집계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광장 사용 허가를 담당하는 부서에선 “대통령이나 내무장관도 허가 심의 과정에 간여하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광장과 정치’를 주제로 캐물은 것도 아닌데 그런 대목을 강조하는 직원들의 태도에서 수도 한복판의 광장이 정치적·이념적으로 민감한 장소임을 인식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었다. 사시사철 조깅·산책을 즐기는 시민이 넘치는 내셔널몰을 볼 때마다 서울광장의 몸살을 떠올리며 ‘미국은 그런 고민을 졸업했으니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하곤 했는데 미국도 그런 고민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게 아님을 깨달았다.

사실 이념·가치관 대립이 미국에도 엄존함을 일깨워준 장면은 한두 건이 아니다. 조지타운대의 공화당원 조직인 ‘영 리퍼블리컨’의 모임을 참관했는데 외부인이 있는 걸 모르는 학생들은 “빌어먹을 민주당 좌파들” 등 험한 말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폭스 케이블 뉴스가 매일 오후 5시에 방영하는 ‘글렌 벡 쇼’는 제3자의 관점에서 보다 보면 역겨울 때가 많다. 너무 주관적이고 감정 섞인 표현으로 반대파를 공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프로는 CNN에 비해 시청률이 훨씬 높다. 진보진영을 잘근잘근 물어뜯는 자극적 멘트가 우파를 끌어들이기 때문이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평소 점잖던 민주당원 교수가 사석에서 보수진영을 “쓰레기”라고 부르며 적개심을 표시하는 걸 보고 놀랐던 기억이 난다.

서로 다른 이념·가치관을 지닌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세상에서 그런 적대감은 불가피한 게 아닐까. 다들 각자 마음속에 그런 뇌관(雷管)을 묻어 놓고 있는 게 아닐까. 정말 중요한 건 한 사회가 그런 뇌관을 다루는 방식이 아닐까.

미국에선 공적인 자리에서 정치적 반대편을 독재, 빨갱이, 수구 등으로 낙인찍는 정치인은 보기 힘들다. 의료보험 개혁을 예로 봐도 길거리에서 우파단체 회원들이 나눠주는 전단지엔 오바마와 히틀러, 스탈린을 동일시하는 자극적 문구가 난무하지만 의회는 이념 대립으로 몰아가는 걸 자제한다.

자신이 동의할 수 없는 정책을 지향한다고 해서 ‘독재’로 규정하고 궐기를 주문하는 전직 대통령도 없다. 기껏해야 미 역사상 가장 이념적으로 치우친 지도자로 꼽히는 딕 체니 전 부통령 정도가 가끔 논란성 발언을 하는데, 그마저도 “오바마 정책이 미국을 덜 안전하게 한다”는 정도가 가장 센 표현이다.

자신의 거울이 일그러져 있을수록 남의 얼굴도 일그러져 보인다. 스스로 중앙점에서 멀어져 갈수록 이념적 스펙트럼의 저쪽 편에 있는 사람이 더 극단적으로 보인다. 오른쪽 끝에 치우친 사람은 중앙점의 왼쪽에 있는 사람을 모조리 ‘빨갱이’로 여긴다. 왼쪽으로 더 멀리 치우칠수록 중앙점의 오른쪽이 모두 독재 야합세력, 극우파로 보일 것이다.

정치지도자와 지식인, 언론이 민초들의 마음속에 있는 뇌관을 일부러 건드려 이념 갈등을 증폭시키는 사회와, 속으론 싫고 밉지만 가치의 다양성을 존중하면서 뇌관을 피해 상생의 접점을 찾아보고 그래도 안 되면 민주적 절차로 결론을 내는 사회…그런 차이가 선진국 여부를 가르는 기준이 아닐까.

이기홍 워싱턴 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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