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속 영국? 지브롤터 주민 “英 식민지가 좋아”

  • 입력 2009년 7월 23일 14시 54분


미겔 안겔 모라티노스 스페인 외무장관이 21일 스페인 남부의 영국령 항구도시 지브롤터를 공식 방문한 것을 계기로 이 도시의 영유권을 둘러싼 양국 간 논란이 다시 불붙고 있다. 스페인 정부 관료가 지브롤터를 공식적으로 찾은 것은 영국령이 된지 300여년 만에 처음이다.

모라티노스 장관은 이날 지브롤터에 대한 스페인의 영유권을 강조하는 한편 이 도시를 둘러싼 영국과의 관계 증진 등에 합의했다고 로이터통신 등 외신은 전했다.

그러나 영국령에 남기를 원하는 지브롤터의 스페인계 주민들은 이날 모라티노스 장관의 방문과 스페인 정부의 개입 움직임에 반발해 집 밖에 영국 국기를 내걸었다.

한편 스페인 보수단체는 정부 관료가 영유권 분쟁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지브롤터를 공식 방문한 것은 잘못 됐다며 국경 근처에서 시위를 벌였다. 스페인 보수야당인 국민당도 "이번 방문은 영유권 주장을 스스로 포기한 것"이라며 정부를 강력히 비난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있는 이베리아 반도 남단에 위치한 지브롤터는 유럽과 아프리카 대륙, 대서양과 지중해의 교착 지점으로 로마제국 이래 군사, 무역의 요지로 불린다. 지브롤터는 1704년 왕위를 둘러싼 스페인 계승전쟁 중 영국에 점령됐고 1713년 위트레흐트 조약으로 영국의 직할 식민지가 됐다.

영국은 지브롤터를 군항과 자유무역항 등으로 활용해 왔으며 현재도 영국군이 주둔해 있다. 스페인 정부는 1964년부터 영국 측에 지브롤터를 반환할 것을 요구하는 가운데 경제봉쇄를 단행하는 등 끊임없이 마찰을 빚어왔다.

지브롤터에선 2002년 영국, 스페인의 공동주권 수용 여부를 두고 주민 투표가 실시되기도 했다. 당시 투표 결과는 '영국 식민지로 남기를 바란다'는 반대표가 99%에 이르렀다. 주민들이 지브롤터가 영국령으로 남는 것이 자유무역항으로서 입지를 다지고 도시가 번영하는데 더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영국 정부는 '주민 의사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결정할 수 없다'며 지브롤터 반환을 반대하는 입장이다. 영국은 또 전략적, 경제적으로 중요한 지브롤터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며 여론이 바뀌지 않도록 신경 쓰고 있다.

남원상 기자 surre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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