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 이란, 중동 맹주 위상 큰 타격

  • 입력 2009년 6월 26일 02시 51분


“이란에 민주주의를”이란 대선 결과에 불복해 정부에 맞서 시위를 벌이고 있는 이란인을 지지하는 미국인들이 24일 샌디에이고 주정부 청사 앞에서 ‘이란에 민주주의를, 모두에게 자유를’이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로 숨진 이란인들을 추모하는 촛불집회를 열고 있다. 샌디에이고=로이터 연합뉴스
“이란에 민주주의를”
이란 대선 결과에 불복해 정부에 맞서 시위를 벌이고 있는 이란인을 지지하는 미국인들이 24일 샌디에이고 주정부 청사 앞에서 ‘이란에 민주주의를, 모두에게 자유를’이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로 숨진 이란인들을 추모하는 촛불집회를 열고 있다. 샌디에이고=로이터 연합뉴스
주변국 “테헤란발 피플파워 넘어올라” 긴장

대통령선거 결과를 둘러싸고 촉발된 이란의 시위사태로 중동 내 이란의 위상이 급격히 추락해 중동의 세력균형에까지 영향을 미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5일 1979년 이란의 이슬람혁명 이후 최대 위기인 이번 사태가 어떻게 결론날지 예단할 수는 없지만 “이미 사건의 파장이 중동 전체로 번져나가고 있음은 확실하다”고 보도했다.

이란 당국이 선거 결과에 항의하는 국민을 무자비하게 진압하는 모습이 전 세계에 알려져 그동안 쌓아올린 중동의 맹주(盟主)이자 역내 패권국으로서의 국제적 위상에 큰 손상을 입었다는 것.

이란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미국과 이스라엘에 노골적인 적대감을 드러냄으로써 아랍권에서 약소국을 대변하는 강국으로 급부상했다. 미국이 테러집단으로 규정한 레바논의 헤즈볼라와 팔레스타인의 하마스 같은 정치세력도 적극 후원해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온건 친미 성향 국가들과 긴장관계였다.

그러나 여성을 포함한 비무장 시위대를 폭력으로 진압하고 살해하는 이란 경찰과 군인들의 모습이 TV를 통해 생생하게 아랍 전역에 방영되면서 국가 이미지는 곤두박질쳤다. 이집트 개혁파 단체 무슬림형제단 에삼 엘에리안 정치국장은 “많은 아랍인이 미국과 이스라엘을 향한 아마디네자드의 자신감 있는 행동에 공감하고 있지만 최근 시위에서 그에게 맞선 이란 시위대의 용기도 높게 평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랍국가들은 테헤란 항쟁이 자국으로 번져 ‘제2, 제3의 피플 파워’로 발화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이란 당국의 강경 진압에 대해 침묵을 지키고 심지어 이란사태 보도 통제까지 하고 있는 이유다. 바레인 정부는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과 이란의 신정 체제를 비판한 칼럼을 실은 신문을 일시 정간시켰으며, 이집트와 사우디아라비아도 국영 매체를 통한 이란 시위 관련 보도를 축소했다.

이런 아랍 국가들의 행동은 시아파 종주국 이란을 그동안 눈엣가시처럼 여겨왔던 처신과는 대비된다. 이슬람 인구의 다수인 90%를 차지하는 이들 수니파 이슬람 국가들로서는 그동안 자국이 성공시킨 이슬람 혁명 방식을 주변국에 강요하면서 핵전력을 포함한 군사력을 증강시키며 노골적으로 공격성을 드러낸 이란이 ‘가시’ 같은 존재였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는 석유가 많이 나는 동부지역에 시아파가 많아 이란을 경계해 왔다.

이란을 둘러싼 국제안보 문제를 최근 책으로 낸 코너스 매테어 정치학자(미국)는 “대부분의 아랍 정부들은 정부에 맞서 일어난 이란 국민의 시위 모습을 지켜보면서 자신들의 취약성을 떠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성동기 기자 esprit@donga.com

아마디네자드 “오바마, 부시처럼 내정간섭”
시위 원천봉쇄… 무사비 “어떤 협박도 내 투쟁 막지못해”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이 25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향해 “이란 내정에 간섭하지 말라”고 강력히 요구했다. 이는 전날 오바마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이란 대선의 합법성에 의문을 제기한 뒤 나온 것이다. 또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변화를 추구한다는 오바마 대통령이 왜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을 똑같이 따라하는가. 이런 식이라면 이란과 어떤 대화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이란 당국은 이날 무장경찰과 바시즈 민병대를 동원해 또 다른 개혁파 대선후보였던 메디 카루비 전 의회 의장이 열려고 한 시위 사망자 추모집회를 원천봉쇄했다. 카루비 후보 측은 이날 홈페이지에서 “카루비 같은 지도자마저 추모 행사 장소를 구할 수 없다는 것은 매우 불행한 일”이라며 “다음 주 테헤란대나 공동묘지에서 집회를 개최할 것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대선 무효화 시위를 이끌었던 야당 지도자 미르호세인 무사비 전 총리에 대한 이란 당국의 전방위 압력도 거세지고 있다. 이란 일간지 에테마드는 24일 무사비 전 총리와 회합한 대학교수와 이슬람단체 회원 70명이 구속됐다고 보도했다. 또 대선 후 항의시위로 지금까지 정치운동가와 언론인, 대학 강사 등 140명 이상이 투옥됐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뉴욕타임스는 “이란 정보당국이 시위대의 ‘심리전 지휘본부’인 야당 대선 후보들의 사무실을 폐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무사비 전 총리는 25일 자신의 웹사이트에 올린 성명에서 “최근 내게 대선 무효화 소송을 철회하라는 압력이 거세지고 있다”며 “하지만 어떤 협박도 이란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나의 투쟁을 멈추게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다시 한 번 결연한 의지를 밝혔다.

이란의 개혁파 성직자인 아야톨라 호세인 알리 몬타제리도 이날 AFP통신에 보낸 성명에서 “정부가 국민의 평화적인 항의시위를 계속 탄압하면 아무리 강한 정부라도 토대가 흔들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무사비 전 총리의 부인 라나바르드 씨(64)도 “이란 정부는 시위대를 마치 ‘계엄령’이 내려진 것처럼 다루고 있다”며 “이번 시위로 구금된 사람들을 즉각 석방하라”고 요구했다.

한편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24일 밤 자신의 당선 축하 파티에 의원 290명을 전원 초청했으나 보수파인 알리 라리자니 의장을 포함해 185명의 의원이 참석하지 않았다고 영국 BBC가 전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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