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민주화 영웅에서 ‘비리의 주범’으로

  • 동아일보
  • 입력 2008년 11월 12일 02시 56분



■ 천수이볜 구속영장 청구

횡령-돈세탁 혐의… 국민 대다수 “벌써 감옥 갔어야”


‘대만의 아들’로 대만 민주화의 상징이었던 천수이볜(陳水扁) 전 대만 총통이 영어(囹圄)의 몸이 되는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졌다.

천 전 총통의 비리를 7개월째 수사해온 대만 최고법원검찰서(대검찰청) 특별수사팀은 11일 천 전 총통을 국무기요비(國務機要費·국가기밀비) 횡령과 뇌물수수, 돈세탁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롄허(聯合)보 등 대만 언론들은 “역사상 전례가 없는 일”이라며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 사상 첫 전직 총통 구속영장

타이베이(臺北)지방법원은 이날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위한 법정을 열었다. 이런 가운데 천 전총통이 병원으로 옮겨지면서 구속영장 실질심사가 중단됐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그가 구속되면 대만 역사상 처음으로 전직 총통으로서 구속 수감되는 사례가 된다.

대만 언론에 따르면 천 전 총통은 2002년 7월부터 2006년 3월까지 국가기밀비 1480만 대만달러(약 6억 원)를 횡령한 혐의다. 또 14억 대만달러(약 560억 원)와 5000만 달러(약 667억 원) 등 1227억 원가량의 불법자금을 해외로 빼돌려 돈세탁을 한 혐의도 받고 있다.

그는 또 2004년 2월 대만 행정원이 민간회사의 토지를 고가에 사주는 대가로 이 회사로부터 2억2000만 대만달러(약 88억 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도 받고 있다.

○ “정치적 박해” 주장…대만 국민 냉담

대만의 독립파를 이끌며 2000년 평화적 정권 교체를 이룩했던 천 전 총통은 당초 대만 국민의 많은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무리한 독립 추구로 경제가 침체일로를 겪고 가족 및 친척 비리가 불거지면서 그는 나락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특히 올해 5월 20일 총통에서 물러난 뒤 검찰의 집중 조사로 횡령과 뇌물수수, 해외 비자금 은닉, 돈세탁 등 범죄가 줄줄이 드러나면서 ‘비리의 주범’으로 낙인찍혔다.

11일 오전 검찰에 출두한 그는 “검찰 수사는 마잉주(馬英九) 총통의 정치적 박해”라며 국가기밀비 횡령과 돈세탁 혐의는 부인인 우수전(吳淑珍) 씨에게 떠넘겼고 나머지 혐의에 대해서는 신문에 일절 응하지 않은 채 6시간 동안 묵비권을 행사했다.

민진당과 천 전 총통 지지자 400여 명은 이날 오전 검찰청사 앞에서 “천수이볜은 죄가 없다”며 항의시위를 벌였다.

하지만 대만 국민 상당수는 “벌써 교도소에 들어갔어야 할 인물이 이제야 들어가게 됐다”며 야유를 보냈다.

대만 언론은 다음 주 중 해외 은닉자금의 돈세탁을 주도적으로 한 것으로 드러난 아들 천즈중(陳致中) 씨 부부 등이 추가 구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다만 우 씨는 구속을 면할 것으로 알려졌다.



베이징=하종대 특파원 orion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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