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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10월 18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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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서 텃세 극복… 목적달성 위해 정치적 폭로도
주의원 당선후엔 키워줄 멘터 찾아 지지기반 넓혀
“오밤비(새끼 사슴의 이름).”
버락 오바마 미국 민주당 상원의원이 대통령선거 출마를 준비하던 2006년 12월 뉴욕타임스의 여성 칼럼니스트 모린 다우드 씨는 오바마 의원을 ‘오밤비’라고 표현했다. 권모술수의 정치판을 헤쳐가기엔 너무 순진한 이상주의자라는 뜻이었다.
실제로 오바마 후보의 ‘웅변’을 현장에서 듣다 보면 침착한 성정과 온순한 성품, 그리고 매우 균형 잡힌 관점의 소유자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그러나 정치초년병 시절의 그는 목적 달성을 위해선 정치적 멘터(조언자, 스승)와 맞대결하는 걸 마다하지 않는 야망가 기질을 보였다는 증언들이 나왔다.
미국 공영라디오방송(NPR)은 16일 오바마 후보가 1990년대 초중반∼2000년대 초반 타향인 시카고에서 텃세를 뚫고 어떻게 정치인으로 성장했는지 당시 지역 정치인 등과의 인터뷰를 통해 조명했다.
NPR는 “오바마의 첫 선거는 앨리스 파머에 대한 ‘정치적 처형’”이라고 표현했다.
파머 씨는 교육·시민운동가 출신의 여성 정치인으로 당시 오바마에 비해 스물두 살 많은 친구이자 정치적 멘터였다.
1996년 당시 일리노이 주 상원의원이던 파머 씨는 연방 하원의원 선거에 도전하면서 자신의 지역구(시카고 남부 제13지역구) 후계자로 오바마를 지명했다. “참한 젊은이”라는 칭찬과 함께.
그러나 파머 씨는 당내 경선에서 탈락했고 주 상원 선거에 다시 출마하기로 했다.
오바마는 돌아온 멘터를 위해 한 차례 더 기다리는 대신 정면대결을 택했다. 그는 파머 의원을 비롯한 당내 경선 경쟁자 3명의 유권자 서명부가 조작됐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조사 결과 일부 서명이 가짜로 밝혀졌고 민주당 텃밭인 이 지역구는 경쟁자 없이 그의 것이 됐다.
이후 오바마는 인적 네트워크 구축에 매진하면서 자신을 정치적으로 키워줄 멘터를 찾는 데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다.
2000년 연방 하원선거 당내 경선에 도전했다가 참패했지만 좌절하지 않고 지역 정치계 거물인 에밀 존스 일리노이 주 상원의장을 찾아가 “연방 상원의원 도전을 꿈꾸고 있다”며 “당신은 누군가를 당선시키기에 충분한 힘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존스 의장은 “오바마의 첫인상은 매우 지적이었지만 그보단 매우 저돌적이란 느낌을 받았다”며 “당시 ‘말은 고맙지만 내가 만약 그런 힘이 있다면 나 스스로 연방 상원의원이 돼보고 싶다’고 대답했다”고 말했다.
오바마는 이후 존스 의장과 함께 백인 보수층이 많이 사는 주 남부를 돌아다니며 정치적 지지기반을 넓히고 ‘다(多)인종 협력망 구축’의 중요성을 배웠다.
당시 한 농촌에서 만난 84세의 할머니는 대뜸 “언젠가 대통령이 될 젊은이”라며 “그때까지 살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존스 의장은 회고했다.
오바마의 초기 정치활동 동지들은 그의 강인함과 생존 능력을 자랑스러워한다. 하지만 지역 활동가인 앨런 도브리 씨는 “오바마는 당시 ‘잘 어울려 지내기’를 배웠고 그게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 수 있을지 몰라도 그런 점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