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능한 경영자가 美경제 벼랑에 몰아”

  • 입력 2008년 6월 19일 02시 56분


‘적대적 인수합병의 대가’인 칼 아이칸 씨(왼쪽)가 10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금융기자협회상 시상식장에서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아이칸 씨가 한국 기자와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적대적 인수합병의 대가’인 칼 아이칸 씨(왼쪽)가 10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금융기자협회상 시상식장에서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아이칸 씨가 한국 기자와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KT&G 공격은 주가가 쌌기 때문”

최근엔 IT업체 야후사냥으로 화제

“무능한 경영자들 때문에 기업경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문제는 시스템이 잘 작동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10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에 있는 매리어트 마퀴스 호텔 연회장. 뉴욕 금융기자협회(NYFWA)가 매년 우수한 성과를 낸 기자에게 상을 주는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이날 시상식의 주요 연설자로 청중 앞에 선 흰 머리에 쉰 듯한 목소리의 노인은 최근 미국 경제의 부실을 초래한 원인으로 기업 경영자들의 무능을 강하게 성토했다.

그는 이어 “난 이제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지 않는다. 이사회에 나가면 되기 때문이다. 아무도 미국의 문제가, 기업의 문제가 무엇인지 생각하지 않는다. 경영자들은 이사회에 참석해 커피와 도넛을 먹고는 잡담하다가 퇴근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의 연사는 칼 아이칸(72).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기업 사냥꾼’이었다.

그는 최근의 미국 경제상황에 대해 “우리는 경제적인 낭떠러지에 서 있는 것과 같다”며 강한 우려를 표명했다. 이어 “지금 미국은 옛 영광으로 살고 있다. 세계 다른 나라에서 제공하는 싼 서비스와 제품을 누리면서 살고 있고 계속해서 달러를 찍어내 달러 가치가 떨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제 인플레이션 때문에 달러를 더 찍어낼 수도 없다. 2류 국가로 전락하고 있는 미국은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 우린 점점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40분 가까이 미국 경제의 부실과 경영자들에 대한 비난이 이어졌다.

청중 사이에서 “기업 경영에 대해 공격하지만 정작 본인은 기업 경영 경험이 없지 않느냐”는 비판적인 질문이 나오자, 아이칸은 “내가 경영할 필요는 없다. 골프를 치거나 놀고 싶어 하는 사람이 아니라 제대로 일할 사람을 경영자로 뽑으면 되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어 “난 경영자에게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지 않는 대신 성과에 대한 책임을 반드시 묻는다”고 덧붙였다.

연설이 끝난 뒤 동아일보 기자와 만난 아이칸은 2년 전 한국 기업 KT&G를 공략했던 이유와 관련해 “회사 실적은 괜찮지만 상대적으로 주가가 저평가된 기업에 초점을 맞추는 게 내가 일하는 방식”이라며 “그런 기업들에 우선적으로 가치를 둔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관심이 있는 한국 기업이 있느냐”고 묻자 “아직은 없다. 지금은 한국과 관련해서는 어떤 일도 하고 있지 않다”고 덧붙였다.

아이칸과의 인터뷰는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인터넷 검색업체 야후(Yahoo) 인수 건과 관련해 미국 기자들이 질문하려고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이미 야후의 주식 5900만 주(4.2%)를 매입한 아이칸은 조만간 24억 달러 규모의 지분을 추가로 산 뒤 8월 열리는 주주총회에서 제리 양 최고경영자(CEO)를 포함한 야후 이사진을 모두 교체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아이칸은 이 자리에서 “마이크로소프트(MS)와 야후는 천생연분”이라며 “구글이 MS의 사업영역인 워드와 엑셀 같은 오피스 프로그램 영역에 침범했기 때문에 MS가 구글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야후 같은 강력한 검색엔진이 필요하다”며 야후를 (비싼 값에) MS에 매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아이칸의 의도대로 일이 진행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날 행사 이틀 뒤인 12일 야후는 MS의 인수 제안을 최종 결렬시키고 자사 홈페이지에 구글의 검색광고 게재를 허용하는 등 구글과 손을 잡았다. 그러나 아이칸이 주총에서 야후 이사진을 장악한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뉴욕=김상수 기자 ssoo@donga.com

기업사냥꾼인가

주주행동주의 리더인가

칼 아이칸…

‘기업사냥꾼’ ‘상어’라는 별명처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기업을 공략하는 것으로 유명한 적대적 인수합병(M&A) 전문가. ‘주주 행동주의의 리더’라는 긍정적 평가도 있다. 1968년 자신의 이름을 딴 증권사(Icahn&co)를 차려 월가에서 활동하기 시작했으며 1980년대부터 적대적 M&A 전문가로 나섰다. TWA항공사, 대형 식품업체 나비스코 등을 인수하며 명성을 쌓았다. 2006년 2월에는 스틸파트너스와 손잡고 한국의 KT&G 지분 6.59%를 인수하며 적대적 M&A를 시도해 한국 경제계에 파문이 일었다. 이후 자산매각, 신임이사 선임 등을 KT&G에 요구하던 아이칸 씨는 10개월 만에 1500억 원(추정)의 차익을 챙겨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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