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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5월 31일 02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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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억짜리 경주마 2000마리-조련사 기수 800명 합숙
내달 7일 경마대회… 뉴욕 최고 갑부 - 서민 함께 어울려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동쪽으로 약 40km 떨어져 있는 뉴욕 주 엘몬트 시.
경주마 시설로는 미국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벨몬트파크 경마장이 있는 곳이다. 29일 약 2.6km²(약 80만 평) 규모의 경마장 안에 들어서자마자 뉴욕 인근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을 정도로 분위기가 달랐다.
곳곳에 쌓여 있는 거대한 건초 더미, 여유롭게 산책하는 경주마들…. 마치 한가로운 시골 마을에 왔다는 착각이 들었다.
경마장 안 도로 표지판은 철저히 ‘말 중심’이었다. 정지 표지판은 ‘STOP(스톱)’ 대신에 ‘WHOA’(말을 멈추게 할 때 내는 소리)였다. 곳곳에 ‘말이 도로를 횡단할 때는 정지’ 등의 표지판이 보였다.
○ 말 한 마리에 500억 원?
요즘 미국 경마 팬들의 관심은 ‘빅 브라운’이라는 명마(名馬)에 쏠려 있다. 빅 브라운이 최근 미국 3대 경마대회인 켄터키더비와 프리크니스에서 연거푸 우승하자 30년 만에 트리플 크라운(삼관왕)이 탄생할지 모른다는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빅 브라운이 다음 달 7일 벨몬트파크에서 열리는 벨몬트 스테이크에서 우승하면 트리플 크라운에 오르는 영광을 안게 된다.
경마장 마구간에서 한가롭게 휴식을 취하는 빅 브라운을 잠깐 볼 수 있었다. 이름에 걸맞게 갈색의 윤기 있는 근육질 몸매는 보기에도 찬란했다.
기자를 안내한 뉴욕경마협회의 존 리 홍보담당 국장에게 빅 브라운의 몸값을 물어봤더니 깜짝 놀랄 만한 답이 돌아왔다.
“얼마 전 빅 브라운의 주인이 5000만 달러(약 500억 원)에 이르는 종마(種馬)계약을 했다. 벨몬트 스테이크 결과에 따라 몸값이 더 뛸 수도 있다.”
요즘 빅 브라운이 뜨면서 인터넷에서는 팬 카페도 등장했으며, 그를 상품화한 모자와 티셔츠도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빅 브라운의 주인은 여세를 몰아 1억 달러에 이르는 경마 관련 헤지펀드를 조성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벨몬트파크에 ‘숙소’가 있는 경주마는 현재 2000여 마리. 마리당 가격이 대개 수백만 달러(수십억 원)씩 하는 비싼 말들이다. 이들은 800여 명에 이르는 조련사, 기수들과 호흡을 맞추면서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다.
○ 도널드 트럼프 등 경주마 주인
귀빈석 고객들은 전통을 철저히 따르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남자들은 반드시 정장에 넥타이를 매야 하며, 여자들은 정장에 모자까지 써야 한다. 경주마 주인들은 별도의 오너재킷을 입어야 하는데, 오너재킷 디자인과 색깔도 100년 전통의 벨몬트파크의 원칙에서 벗어나면 안 된다.
반면 일반석 입장료는 2달러에 불과하다. 주차료도 2달러로 일반적으로 미국 야구장 주차장의 7분의 1 수준이다. 29일 경마장에서 만난 리처드 터커 씨는 “은퇴 후 일주일에 한 번은 꼭 경마장을 찾는다. 베팅을 할 때도 있고 하지 않을 때도 있는데, 말이 뛰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너무 좋다”고 말했다.
○ 미국의 전설적인 기수를 만나다
1970년대 미국의 주요 경마대회를 휩쓸어 전설적인 기수로 통하는 호르헤 벨라스케스(61) 씨를 이날 운 좋게 만날 수 있었다.
7년 전 은퇴하고 지금은 기수 에이전트로 일하는 그는 좋은 기수의 조건으로 말과의 완벽한 교감능력과 함께 ‘가벼운 몸무게’를 들었다.
파나마 출신인 그는 “현역으로 활동할 때에는 고통스러웠지만 하루 음식물 섭취량을 750Cal 이하로 줄여야 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말이 잘 달렸을 때에는 선물로 뭘 줬느냐’는 질문에 대해선 “많은 사람은 당근을 주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나는 설탕과자를 줬다”고 말했다.
벨몬트파크의 최상급 기수와 조련사들의 연수입은 수백만 달러에 이른다. 경기 실적에 따라 연수입이 1000만 달러(약 100억 원)가 넘는 기수와 조련사도 나온다.
엘몬트=공종식 특파원 k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