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부호들 ‘리히텐슈타인 공포’

  • 입력 2008년 2월 28일 02시 55분


美-英-스웨덴 등 8개국으로 탈세수사 확대

“조세피난처 악용 유령회사 세워 세금 덜 내”

‘조세 피난처’로 유명한 유럽 알프스 산악 지역의 소국(小國) 리히텐슈타인이 선진국들의 탈세 수사에 몸살을 앓고 있다.

이번 탈세 스캔들은 리히텐슈타인 최대 금융 그룹 LGT은행의 전 직원 하인리히 키버 씨가 1400명의 고객 정보를 훔쳐 독일 대외 정보기관인 연방정보국(BND)에 팔면서 시작됐다. 이 중 600명은 독일인이었다.

독일 검찰은 26일 탈세 사건에 대한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용의자 150명의 집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2억 유로에 달하는 비밀 계좌 목록이 확인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LGT은행뿐 아니라 리히텐슈타인의 다른 은행에 대해서도 탈세 조사를 확대할 계획이다.

독일에 이어 영국과 프랑스가 탈세 수사에 나섰고 미국도 자국민 100여 명에 대한 세무 조사를 시작했다. 현재까지 리히텐슈타인 은행의 자국민 계좌에 대한 세무 조사에 나선 국가는 호주 스웨덴 캐나다 뉴질랜드 등을 포함해 모두 8개국이라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가 27일 보도했다.

스위스와 오스트리아 사이에 있는 리히텐슈타인은 각종 조세 부담이 적어 수도 파두츠에만 2000여 개사의 외국 회사가 설립돼 있다. 유럽과 미국, 남미의 부호들은 리히텐슈타인의 비밀 계좌에 자금을 예치하고 있으며 리히텐슈타인의 은행들은 그동안 고객의 비밀을 철저히 유지해 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외국 자본이 이 같은 조세 제도를 악용해 리히텐슈타인에 유령회사(paper company)를 세워놓고 세금을 덜 내고 있다고 지적해 왔다.

OECD는 2005년 리히텐슈타인, 모나코, 안도라 등 3개 국가를 금융 개혁에 비협조적인 조세 피난처로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각국의 경쟁적인 세무 조사에 리히텐슈타인은 반발하고 있다. 자국의 고객정보를 구입해 수사를 하는 것이 주권 침해라는 주장이다.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은 26일 이 같은 세무 조사가 조세 피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보도했다. 금융의 세계화로 자본의 이동이 자유롭고 인터넷뱅킹의 발달로 자금 이체가 쉬워져 극소수 부유층에 국한됐던 조세 피난 문제가 중산층에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이 신문은 지적했다.

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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