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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2월 25일 02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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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미국 대통령선거 당시 조지 W 부시 공화당 후보와 앨 고어 민주당 후보는 각각 47.9%와 48.4%의 득표율로 미국을 양분했다. 부시 후보는 중부와 남부를 석권한 반면 고어 후보는 서부와 동북부를 싹쓸이 했다.
각각 파랑과 빨강을 상징 색깔로 하는 민주, 공화 양당이 미국을 ‘블루 네이션’과 ‘레드 네이션’으로 나눠 버린 것이다.
그리고 4년 뒤, 부시 대통령은 50.7%의 지지로 재선에 성공했지만 존 케리 민주당 후보도 득표율 48.3%로 국민 절반의 지지를 받았다. 그렇게 8년 동안 계속된 미국 표심의 양극화는 어느새 자연스러운 ‘현실’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잃어버린 8년’, 그리고 양분된 미국=미국 국내 정치의 분열은 사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부시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빌 클린턴 행정부의 정책과는 정반대로 간다(ABC·Anything But Clinton)’는 기조를 보였다.
한반도 문제로만 국한해 살펴봐도 부시 대통령은 2000년 북-미 수교까지 고려했던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180도 뒤집었다. 현재 의회 비준을 남겨 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도 부시 대통령의 거듭된 비준 요청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의 반대로 전도가 불투명하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미국 내에서는 임기를 마무리하는 부시 대통령의 8년 재임기간을 연구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잃어버린 8년’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부시 행정부의 과오를 분석해 역사적 교훈으로 삼자는 취지에서다.
미국 내 각각 진보와 보수를 대표하는 브루킹스연구소와 후버연구소는 최근 ‘레드 앤드 블루 네이션(Red and Blue Nation)’이라는 두 권짜리 책자를 공동으로 펴냈다. 양극화 원인을 진단하고 이를 완화할 수 있는 사회적 합의를 모색하기 위한 공동 연구보고서다.
부시 대통령의 8년에 대한 주요 비판은 9·11테러 이후 건전한 토론과 이성이 지배하는 담론구조가 무시된 채 기독교적 선악관에 의거해 나와 ‘내 편이 아닌 적’의 투쟁이라는 이분법적 사고가 만연했다는 점.
후버연구소에 몸담고 있는 모리스 피오리나 스탠퍼드대 교수는 “부시 대통령의 통치 기간 중 미국 사회는 이성보다는 외부의 위협으로 인해 강요된 안보 지상주의가 지배한 시대였다”며 “그 결과 미국은 ‘중도’를 잃었다”고 말했다.
▽이유 있는 ‘오바마 현상’=일부 전문가는 민주당 경선에서 ‘변화’를 역설하면서 동시에 ‘통합’을 내세우는 버락 오바마 후보가 돌풍을 일으키는 근본적 동력도 결국 부시 행정부의 실정(失政)이 제공했다고 평가한다.
한반도 전문가인 고든 플레이크 맨스필드재단 소장은 “워싱턴의 낡은 정치를 깨겠다는 오바마 후보는 진정한 전환기의 인물(transitional figure)”이라며 “대중이 열광하는 것은 오바마 후보가 분열자(divider)가 아닌 통합자(uniter)가 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라고 말했다.
주미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8년간 미국 사회는 외교안보 분야뿐 아니라 이민정책, 세금, 사회복지 분야 등에서도 질적인 후퇴를 거듭했다”며 “미국인들이 2008년 대선에 폭발적인 관심을 보이는 것도 새로운 정치에 대한 기대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오바마 후보의 당선이 ‘분열된 미국’의 화합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공화당 지지자들의 거부 분위기가 강한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이나 공화당 후보 지명이 확실한 존 매케인 상원의원이 통합을 이뤄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워싱턴=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