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美 대선, 부동층 특별대의원 300명에 달렸다

  • 입력 2008년 2월 18일 02시 59분


민주 대선후보 결정 캐스팅보트

오바마-힐러리 지지 놓고 저울질

미국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를 선출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될 특별대의원(Super Delegate)들은 누구의 손을 들어 줄까.

뉴욕타임스가 최근 인터뷰 등을 통해 796명에 이르는 특별대의원의 지지 후보를 조사한 결과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이 256명,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이 170.5명(민주당의 해외 특별대의원은 1인당 0.5명으로 집계됨)의 지지를 확보한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는 아직 부동층으로 조사됐다.

일반대의원 확보 경쟁에선 집계 방식에 따라 숫자가 다르지만 대체로 오바마 후보가 힐러리 후보를 30명∼50명 차로 앞선 상황이다.

그러나 어느 쪽도 후보 공식 지명에 필요한 전체 대의원(4049명)의 과반(2025명)을 확보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300여 명에 이르는 부동층 특별대의원이 최종적으로 민주당 후보를 결정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여기엔 지미 카터 전 대통령과 앨 고어 전 부통령도 포함돼 있다.

17일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부동층 특별대의원 중 빌 클린턴 전 대통령 행정부에서 고위 관리를 지내는 등 힐러리 후보와 ‘특별한 인연’을 가진 사람이 30여 명에 이른다.

지역구 정서에선 오바마 후보가 앞선다. 부동층 특별대의원 중 예비경선에서 오바마 후보가 승리한 지역 출신이 108명에 이르는 반면 힐러리 후보가 승리한 지역 출신은 63명에 그친다.

정치인들은 지역구 정서에 민감하다. 오바마 돌풍이 불기 훨씬 전에 힐러리 후보 지지를 선언했던 일부 특별대의원이 고민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오바마 후보가 승리한 주 혹은 선거구에서 힐러리 후보 지지 선언을 한 특별대의원은 79명에 이른다.

부동층 특별대의원 중 남성이 여성의 두 배에 이르는 것도 오바마 후보에게 유리한 요소로 분석된다.

뉴욕타임스는 아직까지 지지 후보를 결정하지 못한 특별대의원들이 남은 예비경선 진행 과정과 후보의 본선 경쟁력 등을 최종적으로 검토한 뒤 마음을 정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한편 워싱턴포스트 최근 보도에 따르면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을 포함한 민주당 지도부는 특별대의원이 민심에 역행하는 선택을 해서는 안 된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 지명 과정에서 당 간부와 현역 정치인들의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 도입됐다. 전직 대통령, 의회 지도부, 상·하원의원, 주지사 등 전현직 민선 공무원과 전국위원회 위원 등으로 구성된다.

뉴욕=공종식 특파원 kong@donga.com

▼親힐러리 흑인 정치인 “고민되네”▼

미국 뉴욕 시 125번가 아폴로극장.

흑인이 많이 사는 할렘에 있는 이 극장은 흑인 사회에서 커다란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1860년 설립된 뒤 1934년 현 위치에 재건된 이 극장은 줄곧 흑인 대중문화의 대표 산실이자 흑인 정치인들이 명실상부한 지도자로 데뷔하는 등용문이었다.

맬컴X를 비롯해 숱한 흑인 지도자가 우뚝 섰던, 붉은색 커튼이 쳐진 그 무대에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이 선 것은 지난해 11월 29일이었다.

당시 흑인 커뮤니티는 압도적으로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 편이라고 여겨졌다. '블랙 프레지던트'라고 불릴 정도로 재임 중 흑인 커뮤니티에 잘해 준 남편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덕분이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개인사무실도 아폴로극장에서 두 블록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냈다.

그러나 오바마 의원은 아폴로극장에서 열린 후원회를 계기로 흑인 커뮤니티의 힐러리 기반을 빠르게 잠식하기 시작했다. '할렘의 정치 르네상스'란 말이 돌기 시작했다.

올해 들어 오바마 돌풍이 본격화하면서 흑인 표심은 급격히 이동했다. 최근엔 80% 이상의 몰표가 쏟아지고 있다.

이런 상황은 흑인 정치인들에게 심각한 고민을 던지고 있다. 흑인 정치인 가운데 상당수는 이미 지난해 힐러리 의원 지지를 선언했다. 특히 뉴욕의 흑인 지도자들 가운데는 클린턴 집안과 오랫동안 친분을 맺어온 사람이 많다.

할렘의 한 소식통은 부동산 개발로 큰 부를 축적한 흑인 유지 집안의 한 정치인 얘기를 전하며 "집안 전체가 일찍부터 힐러리 의원을 밀어 온 이 정치인도 요즘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고 전했다. 지역구 유권자 대다수의 민의를 거스르는 선택을 밀고 나가기 어렵다고 하소연한다는 것.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명운을 쥐고 있어 한국에도 낯익은 할렘 출신의 찰스 랭걸 하원 세입위원장은 힐러리 핵심 지지자로 분류됐지만 요즘 다소 어정쩡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흔들리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고백하는 정치인도 나오기 시작했다. 16일자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지난해 가을 힐러리 의원 지지를 선언했던 존 루이스(조지아) 하원의원은 '흑인의원 코커스' 동료들과 숙의를 거친 뒤 지난 주말 공개적으로 '나는 흔들리고 있다'고 공표했다.

원로 흑인 정치인인 제임스 클라이번(사우스캐롤라이나) 의원은 "힐러리 대세론에 근거해 지지를 선언했던 상당수가 당혹스러워하고 있다"며 "미니 슈퍼 화요일(3월 4일)에도 오바마 돌풍이 이어지면 흑인 정치인들의 이동이 본격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사실 흑인 정치인 가운데는 흑인민권 운동 출신가가 많다. "내 평생 소원은 흑인 대통령 배출"이라고 말해온 그들로선 그 꿈이 갑자기 성큼 현실로 다가올 것 같은 상황에서 힐러리 의원과의 인연이나 개인적 지지 취향을 고집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클라이번 의원은 "1961년 감옥에 앉아서 꿈꿨던 상황이 다가오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당초 결정을 굽히지 않는 흑인 정치인도 있다. 자신의 지역구에선 오바마 지지표가 힐러리의 2배나 나왔지만 변함없이 힐러리 지지 유세를 하고 다니는 코니 브라운(플로리다)의원은 "마르틴 루터 킹 목사가 '피부색이 아닌 콘텐츠에 의해서만 판단해달라'고 하지 않았느냐"고 강조하고 있다.

정치인에게만 압력이 가해지는 것은 아니다. 유명 흑인 평론가인 터비스 스마일리 씨는 자신이 주최하는 블랙유니언 행사에 오바마 의원을 초대했으나 응하지 않자 비판하는 논평을 냈다가 유권자들로부터 항의 e메일 세례를 받았다. 그는 "배신자로 찍히고 살해 위협까지 받았으며 부모와 형제들까지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현역 의원은 모두 수퍼대의원이어서 흑인 의원들의 변심은 후보지명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현재 흑인의원은 하원 43명이며, 상원은 오바마 1명 뿐이다.

찰스 랭걸 의원은 최근 워싱턴포스트 인터뷰에서 "생존가능하다고 여겨지 않았던 후보가 흥분된 상황을 만들며 생존가능해지면 (지지 변화를) 고려해봐야 하는 것 아니냐"며 "하지만 앞으로 어떤 상황이 전개될지는 더 두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워싱턴=이기홍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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