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져나간 꼬마 빙산들 해안에 수두룩

  • 입력 2007년 11월 12일 03시 00분


유엔 총장 ‘온난화 신음’ 남극대륙 첫 방문

9일 오후 남극대륙의 관문인 킹조지 섬.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확인하기 위해 유엔 수장으로는 처음으로 남극대륙을 찾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등 유엔 관계자들과 동행 취재단이 이곳을 찾았다. 서울에서 1만7240km 떨어진 이곳은 남반부 최남단 도시인 칠레의 푼타아레나스에서도 칠레 공군기인 C-130 수송기를 타고 남쪽으로 3시간을 비행해야 도착하는 곳이다.

○ “빙하가 녹으면 환경재앙 온다”

빙하를 좀 더 가까이에서 보려고 C-130에서 경비행기로 갈아타고 킹조지 섬과 주변 남극의 상공으로 날아올랐다.

비행기가 칠레기지에서 이륙하자마자 빙하의 끝에서 떨어져 나온 ‘꼬마 빙산’(유빙)들이 해안에 가득한 것이 보였다. 어떤 해안은 ‘물 반, 유빙 반’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거대한 빙하벽은 금방이라도 빙하 조각이 쏟아져 내릴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특히 킹조지 섬의 ‘콜린 빙하’는 곳곳에 금이 간 모습이 선명했다. 이곳의 빙하는 매년 10m씩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조금 더 바다 쪽으로 비행기를 움직이자 빙하에서 떨어져 나온 얼음 덩어리(빙산)가 여기저기 떠다니는 것이 보였다. 삼각형, 사다리꼴 등 기기묘묘한 모양의 빙산이 파란 빛을 머금고 해류를 따라 바다 위를 유유히 움직였다. 어떤 빙산 윗부분에는 상당한 양의 물이 녹아서 고여 있었다.

과학자들은 남극 빙하가 지금 속도로 녹아 없어지면 해수면이 크게 높아질 것으로 우려한다.

반 총장은 “몇 년 전에 미국 로드아일랜드 주 크기의 남극 빙하가 분리돼 떨어져 나간 적이 있다”며 “남극의 10%인 서쪽 부분 빙하가 없어지면 해수면이 6m 상승한다는 연구도 있다”고 경고했다.

킹조지 섬에 있는 한국의 세종기지 주변의 마리안 소만 빙벽도 떨어져 나가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

○ 달라진 남극의 생태계

환경 변화는 남극의 생태계도 바꿔 놓고 있다.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킹조지 섬에도 선태류, 지의류 등 이끼 식물의 생장지역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이전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식물들도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호세 레타말레스 칠레 남극연구소 소장은 “빙하가 녹아 없어진 자리에 이끼류 생장지가 확대되고 있다”며 “또 그동안 빙하에 묻혀서 보이지 않았던 식물 화석들도 많이 발견돼 계속 수집하는 중”이라고 전했다.

기후가 과거와 다른 패턴을 보이는 것도 문제다. 봄의 끝 무렵인 11월은 펭귄들이 짝짓기를 위해 킹조지 섬에 모여들어 장관을 이루는 것이 보통. 그런데 올해는 눈이 많이 내려 펭귄 무리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았다.

칠레의 푼타아레나스 항구(남위 53도)도 예전에는 한여름인 12월∼이듬해 1월에도 옷을 든든히 입고 있어야 했지만 요즘은 평균온도가 이전보다 높아져 그럴 필요가 없게 됐다고 한다.

유엔 정부간기후변화위원회(IPCC)는 12일부터 17일까지 스페인 발렌시아에서 열리는 제27차 총회에서 최종보고서를 채택할 예정이다. 이 보고서에는 기후변화로 인한 남극의 빙하 감소나 생태계 변화도 포함될 것으로 예상된다.

○ 남극 경쟁 치열

남극에서는 국가 간 신경전도 치열하다. 영국이 최근 남극 주변 일부 해저 지역에 대해 권리를 주장하자 칠레 등이 강하게 반발했다.

남극에 대한 권리를 확보하기 위한 갖가지 아이디어도 속출하고 있다. 칠레는 남극기지에 근무하는 모든 대원들에게 가족 동반을 의무화하고 아이들을 위해선 별도 학교를 지어 운영하고 있다. 또 남극에서 아이를 출산하면 교육비와 양육비를 지원해 주는 정책을 펴 현재 출생지가 남극인 아이가 3명이다.

킹조지 섬=공종식 특파원 kong@donga.com

▼“와!”

반기문총장 세종기지 방문

대원 17명과 일일이 ‘찰칵’▼

9일 오후 4시 반 남극 킹조지 섬 세종과학기지(월동대장 이상훈)에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일행을 태운 보트가 도착하자 기다리고 있던 대원들은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대원 몇몇은 차가운 바닷물에 들어가 반 총장 일행이 탄 보트를 끌어올렸다.

이상훈 월동대장은 “총장님이 직접 이렇게 기지를 찾아 주어 영광”이라고 감격스러워했다.

세종기지 17명의 대원은 모두 남자로 극지 연구 등을 위해 1년씩 교대로 근무한다. 올해 1월 임무를 시작한 20차 월동대원들은 1년 동안 남극 내 외국기지 방문 외에는 외출이 허용되지 않는다. 10개월 넘게 고립된 생활을 해 한국 출신 유엔 사무총장을 맞는 감격이 더욱 큰 듯했다. 반 총장은 대원 전원과 차례로 기념사진을 찍으며 오지에서 근무하는 과학자들을 격려했다.

대원들은 남극 바다에서 직접 낚시를 해서 잡은 참치와 대구로 요리를 하고 위스키에 빙하에서 채취한 얼음을 섞은 술잔도 준비했다.

반 총장은 월동대장과 동명인 이상훈 주방장의 요리사 모자에 ‘대원들 영양 보급 잘해 주세요’라고 사인을 해 주었다.

예정된 한 시간의 방문시간이 훌쩍 지나자 대원들은 아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반 총장은 대원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면서 석별의 정을 나눴다.

킹조지 섬=공종식 특파원 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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