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 바이로이트 축제극장 ‘계승 전쟁’

  • 입력 2007년 7월 28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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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29세인 리하르트 바그너의 증손녀 카타리나 씨가 독일 바이로이트 축제극장의 총감독 자리를 차지할 것인가.

독일 음악의 ‘왕가’ 바그너 가문이 맡아 온 이 극장의 총감독 자리를 놓고 대작곡가 바그너의 증손녀들 사이에 ‘왕위 계승 전쟁’이 치열하다.

바이로이트 축제극장은 독일 음악극(Musikdrama)의 창시자 리하르트 바그너가 바이에른 왕 루트비히 2세의 후원으로 1876년 개관한 극장. 4부작 음악극 시리즈 ‘니벨룽의 반지’를 비롯한 바그너의 주요 작품들이 이곳에서 초연됐다. 1882년부터는 세계 최고 권위의 음악극 축제인 바이로이트 음악축제가 열리고 있으며 총감독은 극장 운영과 작품 연출의 최고 권한을 쥔다.

이번 사태는 88세를 바라보는 총감독 볼프강 바그너 씨가 25일 시작된 올해 축제 개막작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거’ 연출을 막내딸 카타리나 씨에게 맡긴 데서 비롯됐다. 40년간 바이로이트 극장을 지배해 온 볼프강 씨는 최근 건강이 급격히 나빠지면서 후계자 선정이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볼프강 씨가 늘 자신이 연출해 왔던 작품을 카타리나 씨에게 맡겨 극장 운영을 넘길 뜻을 분명히 하자 전 부인이 낳은 딸 에바 씨가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에바 씨는 리하르트 바그너 재단에 의해 이미 후임자로 뽑힌 바 있다. 볼프강 씨의 형 빌란트의 딸인 니케 씨도 “나야말로 적임자”라며 후계자 계승전에 뛰어들었다.

카타리나 씨는 29세에 불과하지만 에바 씨와 니케 씨는 둘 다 62세여서 한국으로 치면 환갑을 넘겼다. 각각 지적 세련미와 화려한 국제적 경험을 갖춘 노부인들이 몇 차례 오페라 연출 경험이 고작인 ‘프로일라인 바그너(바그너 양)’와 다투고 있는 셈이다.

공식적으로 1973년부터 총감독을 선정할 권한은 바그너 재단에 있다. 재단 이사회는 바그너의 후손들과 국가 위촉을 받은 위원들로 구성돼 있다. 재단은 2001년 22 대 2라는 압도적 표결로 에바 씨를 후임자로 뽑았다. 그러나 볼프강 씨는 이를 거부했고 볼프강 씨와 에바 씨는 사이가 틀어졌다. 바그너 재단은 ‘바이로이트 축제는 바그너 후손이 운영할 때 가장 효율적’이라고 판단해 후손들 간에 합의가 이뤄지길 바라고 있다.

한편 니케 씨도 총감독 자리를 요구할 이유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나치 협력 혐의로 일시 폐쇄됐던 바이로이트 극장을 다시 열었던 주인공이 니케 씨의 아버지인 바그너가의 장손 빌란트였다. 그는 나아가 19세기 스타일의 구식 무대도 상징성이 강한 현대적 무대로 바꿔 유럽 문화계가 다시 이 극장을 주목하도록 했다.

니케 씨는 1966년 빌란트가 죽기 전까지 아버지의 연출을 도왔고 1999년에 총감독 자리에 도전했지만 볼프강 씨의 반대로 무산된 바 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에게는 62세라는 나이가 부담이다. 음악계 인사들은 “볼프강 씨가 40년간 지배한 바이로이트에 새로운 피가 주입돼야 한다”며 대체로 카타리나 씨를 지지하는 형국이다.

한편 일찌감치 기대를 모았던 카타리나 씨의 25일 연출은 나쁘지 않은 평을 받았다. 독일 일간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은 “카타리나 씨가 연출 경험이 적은 것을 고려하면 실망을 주지 않았다. 그는 바이로이트 무대의 많은 전통적 금기를 깼다”고 평했다.

르몽드는 “가수들의 음악은 형편없어 야유를 받았지만 카타리나 씨의 현대적 연출은 성공적이었다”고 전했다.

파리=송평인 특파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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