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작된 영웅담’ 고개숙인 미국

  • 입력 2007년 4월 26일 03시 00분


코멘트
■ ‘전쟁영웅 만들기’ 청문회

“당신들이 왜 나를 영웅으로 만들려 했는지 나는 모른다. 분명한 것은 전장에서 벌어지는 진실이 하찮아 보일지라도 당신들이 과장하려는 영웅담보다는 훨씬 더 영웅적이란 점이다.”(제시카 린치)

24일 미국 하원에선 다소 이색적인 청문회가 열렸다. 미 행정부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영웅담을 고의로 조작하거나 과장했는지 밝히기 위한 청문회였다.

증인은 대표적인 영웅담의 주인공이었던 제시카 린치(24·여) 전 일병 본인과 미식축구 스타 출신 전사자인 펫 틸먼(사망 당시 27세)의 동료와 유족.

4년 전 극적인 구출 스토리의 주인공으로 떠올랐던 린치 씨는 차분하면서도 단호하게 “나는 람보처럼 싸우지 않았다. 교전에 참가하지 않았다. 독일 병원에서 나의 부상은 총격 때문이 아니라 타고 있던 험비가 뒤집혀 발생한 것으로 진단했다”며 “실제로 하지 않은 일로 칭찬을 받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다”고 밝혔다.

린치 씨는 미군의 이라크 침공 초기인 2003년 3월 22일 동료들이 모두 전사하거나 부상한 상황에서 끝까지 싸우다 포로로 잡혀 고문을 당하던 중 미 특공대가 구출한 것으로 발표돼 당시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그 뒤 언론의 추적 보도로 고문이 아니라 이라크군 병원에서 간호를 받고 있었으며 구출 과정도 극적인 상황은 아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 파문을 일으켰다.

아직도 보조기의 도움 없이는 서거나 걸을 수 없는 린치 씨는 “지금도 왜 그들(미군 당국)이 거짓으로 나를 ‘전설’로 만들려고 했는지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한편 미식축구 스타 틸먼의 전우였던 브라이언 오닐 씨는 이날 청문회에서 “틸먼이 숨진 직후 직속상관인 중령에게서 같은 부대에 있던 틸먼의 동생에게 사망 경위를 말하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폭로했다.

360만 달러의 프로구단 연봉 계약 제의를 뿌리치고 2001년 말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자원입대한 틸먼은 2004년 4월 22일 알카에다 잔당과의 교전 중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 당국은 틸먼이 위험에 빠진 다른 특수부대 팀을 구출하기 위해 레인저 팀을 이끌다 적의 사격을 받았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한 달이 더 지나서야 틸먼이 협곡에서 동료 특전부대원이 쏜 오인사격으로 숨졌음이 밝혀졌다.

틸먼의 어머니 메리 틸먼 씨는 “휘황찬란한 이야기를 만들어냄으로써 당신들은 진정한 영웅의 의미를 축소하고 있다. 이건 나라를 위한 길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