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이민 1.5세대 “우린 문제 없어”

  • 입력 2007년 4월 21일 03시 01분


《“아들놈이 요즘 이순신 장군에 관심이 많아서 아빠가 서울 출장 간다고 하면 선물은 꼭 한국 역사책을 사다 달래요. 영어로 된 청소년용 역사책이 마땅히 없어서 대학 논문 같은 500쪽짜리 책을 사다 줬는데 손에서 놓지를 않더라고요.” 미국 워싱턴 근교 버지니아에 살고 있는 박해찬(45) 변호사는 요즘 9학년(중3), 6학년인 두 아들과 한국의 역사 얘기를 하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자칫 미국인도 한국인도 아닌 어정쩡한 존재가 될까 봐 걱정했지만 오히려 양쪽의 장점을 접목한 인재로 키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점점 강해지는 것이다.》

그는 “주변을 봐도 집에선 부모에게서 한국의 전통적 미덕과 가치관을 배우고 밖에서는 개방적이고 사리가 분명한 장점을 흡수하며 자란 경우가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조승희 사건요? 총기의 접근성에 따라 피해 규모는 다르겠지만 어느 사회에서나 생길 수 있는 사회병리학적 사건 아닐까요. 그가 이민 1.5세대라는 사실과는 관련이 없다고 봅니다.”

박 변호사뿐만 아니라 미국의 한인들은 한국 내 일각에서 조승희의 범죄를 이민 1.5세대의 부적응 문제로 바라보려고 하는 데 결코 동의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11세 때 이민 온 다니엘 박(24·뉴욕시립대 법과대학원 재학·뉴욕 거주) 씨는 “처음에 영어 때문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해결됐고 이민자여서 겪은 어려움보다는 긍정적 측면이 더 컸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때 대다수가 백인이었어요. 애들이 처음엔 내 앞에 와서 리샤오룽 흉내를 내고 장난을 치기도 했어요. 하지만 곧 다 친한 친구가 됐지요. 한인커뮤니티에서 활동하면서 한국어도 열심히 공부해 지금은 인터넷으로 동아일보도 아무 문제 없이 잘 읽어요. 어느 세대나 어려움이 있지만 노력하면 다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초등학교 5학년 때 이민 온 신동준 박사는 “누구나 한 번은 정체성의 위기를 겪지만 결국은 다들 잘 극복해 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신 박사는 “새로운 환경에 놓임으로써 더 어려움을 겪을지 몰라도 도전을 통해 성공 잠재력을 키울 가능성은 더 높다”며 “양면이 있고 결과적으로 자신이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사실 많은 이민 1.5세대가 느끼는 장벽은 한국 사회의 폐쇄성이라는 의견이 많다.

박 변호사는 “많은 1.5세대가 한국과 미국을 이어 주는 교량 역할을 하고 싶어 하는데 여전히 공채 몇 기냐, 어디 출신이냐를 따지는 한국 풍토에 스며들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조승희 사건에 대한 한국 사회의 반응에 대해서도 1.5세대는 생각이 조금 다른 것 같다.

10세 때 이민 온 마리사 위(43·여·약사·뉴저지 주 거주) 씨는 “조승희는 우연히 한국인이었을 뿐 한국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며 “나도 기독교인이지만, 주미 대사가 참회의 금식기도를 제안했다는 뉴스를 보고 당혹스러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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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뉴욕=공종식 특파원 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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