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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7년 2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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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인 알리와 마야다 오베이디 씨 부부는 이날도 오전 내내 사무실을 기웃거리다 발걸음을 돌렸다. 체류 허가 기간을 연장하려 했지만 또 허탕을 쳤다.
오베이디 씨 부부가 이라크에서 도망쳐 나온 것은 6개월 전. 수니파와 시아파 간 종파 갈등이 격화되면서 자녀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에까지 폭탄이 떨어지자 ‘이제는 지긋지긋해 못살겠다’ 싶었다. 가족은 인근 요르단으로 탈출을 감행했다.
체류 기간 연장을 받지 못하면 조만간 불법 체류자가 될 판이다. 수중의 돈도 얼마 남지 않았다. 더군다나 요르단 정부는 내년부터 이라크인 학생의 요르단 학교 등교를 불허할 방침이다.
오베이디 씨 부부처럼 요르단으로 밀려들어온 이라크 난민은 70만∼100만 명으로 추산된다. 최근에는 불법 체류자로 적발돼 쫓겨나는 사람도 생기기 시작했다.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에 따르면 시리아와 이집트, 레바논 등지로 떠난 이라크 난민은 200만 명. 이라크인 10명 중 1명꼴이다. 자기 집을 잃은 이라크 내부 난민(180만 명)까지 합치면 국내외 난민이 합계 400만 명으로 추산된다. 팔레스타인 난민 행렬 이후 최대 규모다.
| 이라크 난민 현황 | |
| 국가 | 수 |
| 시리아 | 100만 명 안팎 |
| 요르단 | 70만∼100만 명 |
| 이란 | 5만4000명 |
| 이집트 | 5만 명 |
| 레바논 | 4만 명 |
| 이라크 내 난민 | 180만 명 안팎 |
그러나 이들 난민을 받는 인근 국가들의 시선은 점점 냉랭해진다. 70만 명의 난민이 거주하는 요르단에서는 “이라크인 때문에 물가가 오르고 경제와 치안이 불안해지고 있다”는 불만이 높아졌다. 이라크에서의 종파 간 유혈 사태가 요르단으로 번질 것이라는 우려감도 퍼져 있다.
16일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는 전문가의 말을 빌려 “이대로라면 생계가 절박해진 이라크인이 범죄 세계로 빠져들 것”이라고 보도했다.
미국이 지난주 이라크 난민 7000명을 받겠다고 밝혔지만 대다수 이라크인에겐 그림의 떡이다. 지난해 미국행을 신청한 이라크인 5만 명 중 실제 체류 허가를 받은 사람은 단 202명.
미군의 통역사로 활동한 한 이라크인은 “시아파와 수니파 양쪽에서 반역자라는 낙인이 찍혀 신변의 위협을 받는다”며 “미군을 도왔는데도 계속 아무런 설명을 듣지 못한 채 미국행을 거부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유럽의 다른 나라에 이민으로 받아들여지려면 자국에서 공격 대상으로 생명의 위협을 받는다는 확실한 증거가 있어야 한다. 대다수 이라크인은 이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지만 ‘돌아가면 납치당하거나 죽는다’는 우려 때문에 불법 체류자 퇴거 명령에도 꿈쩍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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